박정대(55) 팬택 사장은 지난 9일 미국 시카고 한 호텔에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모토로라와 6억달러 규모(4백50만대)의 휴대폰 공급계약을 성사시킨 후 만감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95년 당시 LG정보통신 단말사사업본부장으로 무선호출기 개발을 주도하던 일, 올해초 많은 고민끝에 LG를 떠나 팬택으로 옮긴 일, 지난 7월 첫 자체단말기 개발을 끝내고 수출에 나선 일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무엇보다 기술력 하나로 세계적인 기업에 대규모 공급권을 따냈다는데 더할 수 없는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기업 경영자로서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없을 것입니다"

올초 박병엽 팬택 부회장의 삼고초려(三顧草廬)끝에 지금의 자리에 온 박정대 사장은 대기업 고위임원에서 벤처기업의 전문경영인으로 변신에 성공한 몇안되는 기업가이다.

박 사장은 특히 LG정보통신 시절 단말사업본부장(전무)을 맡으면서 "싸이언" 휴대폰 개발을 주도한 주인공으로 이적 당시에도 화제를 모았다.

지난주 언론이 크게 다룬 "팬택, 모토로라에 6억달러 공급계약"은 연간 수출건으로는 사상 최대규모이자 벤처기업으로선 유례없는 "사건"이다.

박 사장은 이 수출을 한달반만에 성사시켰지만 그 과정에서는 모토로라와 밀고당기는 막후 협상이 치열했다.

"중남미 수출 2백50만대 물량에 대해 1달러라도 더 받겠다는 생각에 끝까지 물고 늘어졌습니다. 대당 1달러면 얼마입니까. 무려 2백50만달러입니다. 결국 우리의 주장을 관철시켰죠. 게다가 현지 생산물량에 대한 로열티로만 6백만달러 정도를 추가로 얻어냈습니다"

박 사장은 따라서 주위에서 보내는 "값싼 수출이 아니냐"는 눈초리에 대해 "충분히 제값받고 성사시킨 수출"이라고 강조했다.

팬택의 이번 대규모 수출은 "세계 일류 품질"을 강조하는 박 사장의 지론 덕분에 가능했다.

평소 e메일을 통해 직원들과 대화를 즐기는 박 사장은 지난주 모토로라와의 계약을 성사시킨 후 시카고에서 샌디에이고로 날아가는 비행기안에서 "좋은 품질과 고효율의 생산성을 유지할 때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내용의 메일로 직원들의 마음을 독려했다.

"세계적인 기업인 모토로라가 자사 공장을 제처두고 팬택에 생산을 맡긴 것은 놀랄만한 것입니다. 팬택이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온 품질과 생산력이 인정받은 결과이지요"

"내년도 장사는 이미 끝내 놓았다"는 박 사장은 벌써 2002년 수출과 내수물량을 준비하고 있다.

박 사장은 팬택의 창업자인 박병엽(38) 부회장과 사석에서는 "형님,동생"하는 사이다.

LG시절 팬택과 기술지원 관계를 가지면서 처음 박 부회장과 연(緣)을 맺었다.

박 사장은 박 부회장을 "뚝심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경영자"로, 박 부회장은 박 사장을 "정말 경영을 알고 실천하는 전문경영인"으로 표현한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