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52개 부실기업 정리방안이 발표되자 전문가들은 대체로 "방향은 옳으나 기대수준에 못미친다"며 "한국 정부와 정치권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부가 현대건설을 법정관리에 넣겠다며 현대처리에 관한 강력한 의지를 밝혔지만 여론은 시큰둥했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과 현대건설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의 김경림 행장은 기자회견 등에서 현대건설에 대한 정부와 채권단의 입장이 얼마나 강경한지를 설명하느라 많은 시간을 쏟기도 했다.

개혁주체세력의 강력한 리더십이 부족한데 따른 여론의 차가운 반응 때문이다.

개혁전위부대나 정부의 리더십 없이는 개혁의 성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동안 정부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방금고와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에서 보듯 권력형 비리.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의약분업을 무리하게 시행한 바람에 정부 영(令)이 서지 않게 됐다.

장관들은 수시로 말을 바꿔 국민들을 헷갈리게 했다.

지난 4월 총선전엔 공적자금 추가조성 필요가 없다더니 지금은 40조원이 더 필요하다고 국회에 보증동의서를 낸 상태다.

투입적기를 놓쳐 국민부담만 더 늘어났다.

공적자금 투입은행에 대한 감자(자본금 감축)는 없을 것이라더니 이제 감자를 할 수도 있다고 슬그머니 말을 바꾼다.

은행간 합병이 조만간 나타날 것이라는 말은 벌써 몇개월째 되풀이하고 있다.

장관들의 기대와 달리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다.

예금부분보장제도 등에 대해서도 오락가락했던게 사실이다.

한때 정상화됐던 정치권도 정현준 사건을 둘러싼 여야 대립으로 또다시 절름발이가 됐다.

''정현준 펀드''에 여권 핵심인사가 가입했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여야의 대치상태가 재연돼 경제난 극복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원활한 경제정책 조정을 위해 경제부총리제를 신설키로 한 정부조직법개정안은 언제 통과될지 불투명하다.

재정경제부 장관은 경제현안 조율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필요할 때마다 ''큰 소리''를 내야 할 판이다.

요즘 필리핀 대만 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리더십 부재 때문이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태풍도 피해갔던 대만경제는 지난 5월 취임한 천수이볜 총통의 정치적 리더십 부재와 투자자들의 신뢰저하로 주가와 대만달러화 가치가 급락하는 양상이다.

필리핀은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으로 페소화 가치가 급락했으며 태국도 정치적 불안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빠져 나가고 있다.

김중수 경희대 교수(경제학)는 "사회지도층이 이해상충을 조정하고 이익집단을 설득할 수 있는 지도력이 있는가로 위기 재발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리더십을 복원하려면 우선 "정부가 현실을 인정하고 잘못된 것은 솔직히 털어놓는 자세가 필요"(이언오 삼성경제연구소 이사)하다.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나열식 개혁에서 탈피, 선택과 집중식으로 핵심과제를 마무리하는 방식도 리더십을 높일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강현철 기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