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협약이 새롭게 형성되는 국제 통상 및 경제질서의 한 축으로 등장하고 있다.

전세계적인 온실가스 배출 억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 협약이 선진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에도 준강제적인 의무를 부과하게 될 경우 세계 경제전반이 엄청난 혼동의 회오리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사는 제6차 당사국총회(COP6.11월 네덜란드 헤이그)를 앞둔 기후변화협약의 의미와 앞으로의 전개 방향,한국의 에너지 정책의 현주소,대체에너지 개발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전문가 좌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회엔 김동원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심의관,김태유 서울대 공과대 교수,신성철 에너지기술연구소 박사,최승국 에너지절약시민연대 사무처장이 참석했다.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김동원 심의관=현재 진행되는 기후변화협약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이 미국 등 선진국처럼 지금 기후변화협약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게된다면 그것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재앙이 될 것입니다.

현재 기술수준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하려면 결국 에너지수요를 동결해야 하는 데 이 경우 산업 전체가 붕괴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선진국들의 압력이 높아가고 있지만 당장 이런 사태가 오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다만 지금부터 10~20년 뒤를 대비해 에너지 절약을 준비해야 합니다.

<>최승국 사무처장=지구온난화로 인해 해마다 해안선이 높아지고 지구촌 생태계가 큰 변화를 겪고있습니다.

인류의 삶도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지요.

기후변화협약은 이같은 문제를 막기위해 국제사회가 도출해낸 합의입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이 협약의 내용이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으로서도 당장 온실가스 배출 감축의무를 지지는 않지만 이 협약에 맞춰 에너지정책 전반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태유 교수=기후변화협약은 환경문제 차원보다는 경제문제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극단론자들은 산업화에 앞선 선진국들이 개도국 및 후진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환경문제를 앞세워 기후변화협약을 내놓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발전한 선진국과 달리 산업화의 한가운데 서있는 개도국의 경우 온실가스 규제를 받게되면 더이상 성장할 수 없게 됩니다.

영원히 그 수준에 머물거나 오히려 후퇴하게 되지요.

현실적으로 한국은 기후변화협약에서 최우선적인 타겟이 되고있습니다.

벌써부터 선진국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라는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사활을 걸고 제대로 대처해야 할 부분입니다.


<>신성철 박사=기후변화협약을 경제문제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데 동감합니다.

특히 기술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선진국들은 이 협약을 통해 많은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환경규제가 심해지면 심해 질수록 기술에서 앞서있는 반사이익을 얻게되지요.


<>김 심의관=기후변화협약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에너지절약이 얘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에너지정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가격문제라고 봅니다.

그러나 여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요.

물가나 산업경쟁력 차원을 고려할 수 밖에 없었고 에너지 값이 상대적으로 싸게 책정되왔지요.

그 결과 최근에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 등을 미세조정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있습니다.

반발이 심하기 때문이죠.

에너지 가격이 원래 값싸다는 인식은 바꿔야 합니다.


<>김 교수=미국 사람들은 한국의 한달 전기요금이 여름철 수박 1개 값과 엇비슷하다는 얘기에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무척 놀랍니다.

가격을 현실화하는 것은 옳지만 지금처럼 기업이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전면적인 가격조정은 곤란합니다.

과거의 에너지 다소비 산업설비를 한꺼번에 교체할 수 없다면 시기를 두고 점차적으로 가격을 인상해 기업이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합니다.

또 한가지 문제는 에너지 절약은 낭비성.소비성 수요를 줄이는 것입니다.

산업용 원료로 쓰이는 에너지량이 많다고 이것부터 줄이자고 나서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국가경제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에너지정책은 눈앞의 시점이 아니라 보다 멀리 내다보고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에너지관련 각종 규제를 규제개혁 차원에서만 접근해 손쉽게 풀어버린 것은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에너지분야 규제는 풀더라도 제일 나중에 풀어야하는 분야입니다.


<>신 박사=국제유가 변동에 취약한 산업구조가 만들어진 것은 확실히 문제입니다.

고유가 시대에도 물가안정이나 산업경쟁력을 고려해 값싼 요금이 유지됐기 때문에 기업들이 에너지 가격변동에 취약해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앞에는 원유 공급부족과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축소,고유가 체제 지속 등의 악조건들이 놓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안정에 초점을 맞춘 가격정책은 확실히 문제가 있습니다.

에너지 정책은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최 처장=한국의 에너지 정책에는 좋은 정책이 많습니다.

그러나 일관되고 꾸준하게 실천되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기업과 국민들이 에너지가 소중하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절약의지를 심어주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김 교수=대체에너지 개발이 이슈화되고 있지만 에너지 문제와 환경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단을 찾기란 힘든 일이지요.

총에너지 수요에서 태양열 풍력 등 이른바 대체에너지로 부터 공급받을 수 있는 양은 최대한으로 잡아도 5%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입니다.

기술수준이 발전된다하더라도 이 범위를 크게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에너지분야 기술개발은 이보다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방향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신 박사=대체에너지 개발을 지금처럼 태양열 등의 자연에너지로 보면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김 교수 얘기대로 총수요의 5%를 충당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범위를 넓히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석탄을 지금처럼 그냥 땔감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이를 새롭게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또 공해물질을 획기적으로 제거하는 기술이 개발되면 상황이 달라지죠.

그런 관점에서 접근이 이뤄져야 합니다.

기존의 석유 석탄과 같은 화석에너지를 보다 친환경적인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개발작업이 필요합니다.


<>김 심의관=대체에너지는 기존의 화석에너지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집니다.

대체에너지가 보다 폭넓게 보급되지 않는데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앞으로 고유가 체제가 지속되고 꾸준한 연구개발투자가 이뤄지면 조금씩 대체에너지 이용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그런 경우에도 화석에너지보다 수송 등에서 까다롭다는 문제는 남아있습니다.


<>최 처장=경제성 문제를 언급했는데 기존의 화석에너지에 환경오염 등의 사회적 비용을 부과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고 생각입니다.

화석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환경훼손 등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대안에너지(원자력을 제외한 재생가능한 에너지)가 경제성이 없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안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한 시장만 만들어주면 충분히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선 의무구매 등의 방법을 동원할수도 있겠지요.

풍력발전의 경우 일반 화력발전소와 비교할 때 가격이 1.5배 정도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정책의지만 있으면 활용이 가능합니다.


<>김 교수=원자력은 온실가스를 발생시키지 않는 에너지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신규 원전부지 확보 및 핵폐기물 보관 등의 현실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에너지 소비증가율이 최근 10년간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는 한국 현실에서 핵발전을 포기 또는 축소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원자력의 비중을 어느정도로 가져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또한가지 문제는 핵재처리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핵주권을 포기한 것으로 하루빨리 되찾아야 합니다.

재처리가 가능해지면 핵폐기물 문제도 상당부분 해결됩니다.


<>신 박사=원자력 확대론이나 폐지론 모두 한쪽에 치우친 의견이라고 봅니다.

전체 발전의 45%를 차지하는 원자력으로 인해 이만큼이나마 에너지 위기를 극복해가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환경문제를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지요.

일단은 원전비중을 현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대안이 있는지를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 처장=원자력에서 기후변화협약의 돌파구를 찾으려 해서는 안됩니다.

원자력은 결코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보장해주는 안전한 에너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실가스 발생은 화석연료보다 적겠지만 안전성 측면에서는 훨씬 위험합니다.

전세계적으로도 원자력 발전은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한국도 현재 가동중인 곳을 제외하고 신규 건설키로 한 원전은 계획을 보류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기후변화협약에 대응할 해법은 태양광 풍력 등 재생가능한 에너지에서 찾아져야 하며 이는 피할수없는 흐름이기도 합니다.


<>김 심의관=70년대 유가파동후 시자된 원전 건설은 에너지 위기 극복에 큰 도움이 됐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전력수요가 빠르게 늘고있기 때문에 원자력의 발전비중을 현수준으로 유지하려해도 추가적인 발전소 건설이 불가피합니다.

다만 원자력의 비중을 어느정도 수준에서 가져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부도 고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진국에서 원자력이 무조건 폐기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미국의 경우 최근 다시 원자력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리=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