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태국경제의 모습은 지난 97년 경제위기때의 복사판이다.
전세계가 이런 태국경제의 빨간신호에 숨을 죽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3년전 아시아 경제위기가 바로 "태국발"이었기 때문이다.
태국경제는 경제위기이후 99년부터 빠른 회복세를 탔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5.9%에 달했다.
경제위기 직후인 98년 초 달러당 56바트까지 치솟았던 환율도 98년 말부터 36∼37바트선으로 떨어지고 200선까지 추락했던 종합주가지수 역시 올 초 500선에 근접했다.
그러나 경기둔화에 유가급등까지 겹치자 태국경제의 허약체질은 단박에 드러났다.
정치불안까지 가세하면서 바트화가치는 올들어 25%나 떨어지고 주가는 반토막이 됐다.
태국정부는 지난 24일 전자부품의 수입관세 인하,52억바트(약 1천3백억원)의 특별융자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긴급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효과는 거의 제로였다.
정부의 정책을 비웃듯 이날 바트화 환율은 31개월 만에 최고치인 달러당 44.17바트까지 치솟았다.
결국 ''시장개입 불가론''을 외치던 태국중앙은행은 시장개입을 통해 환율급등의 불길을 진화해야 했다.
시장개입 직후 바트화는 43.2~43.84바트대로 떨어졌지만 시장개입이라는 ''진정제''의 약효는 금세 사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태국의 이같은 경제불안은 정치와 경제의 합작품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유가급등,전자제품 수출 둔화 등으로 비틀대던 태국경제는 장관들의 재산은닉 스캔들,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여야 갈등 등 ''정치혼란''까지 겹치면서 위기의 벼랑에 몰렸다는 것이다.
경제가 불안해지자 정부의 현행 저금리정책이 수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경기부터 살리고 보자며 연 2%대의 저금리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공장가동률이 54%에 불과한 현 시점에서 금리인상은 경기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또 원활한 외채상환을 위해서도 저금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금융위기 직전 1천50억달러였던 외채는 아직도 8백억달러나 된다.
외채를 6백억달러 수준으로 줄이지 않으면 금융위기 재발의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부측의 판단이다.
그러나 이같은 저금리정책으로 외화유출이 가속화되고 물가도 불안해질 것이라는 저금리정책 반대론자들도 적지않다.
민간 이코노미스트들은 외화유출을 막고 금융위기 재발의 고리를 빨리 끊기 위해서는 금리인상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자본유출 상황이 지난 97년 금융위기 직전과 비슷해 이대로 가다간 ''제2의 금융위기''는 시간문제란 지적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금리정책처럼 태국경제가 적어도 내년 초까지 경기둔화와 정치불안의 미로 속을 나침판없이 헤매는 신세가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노혜령 기자 h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