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8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제4차 세계반도체협의회(WSC)총회가 열렸다.

이곳에 참석한 세계 전자업계 대표들이 한결같이 반도체 산업의 호황을 전망했다.

필립스의 아더 반더 포엘 회장은 "정보통신 발전추이에 비춰 앞으로 10년간 반도체 산업이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후지쓰사 카주나리 시라이 전무와 대만 파운드리 메이커인 TSMC의 모리스 창 회장 등도 맞장구쳤다.

삼성전자 이윤우 사장은 연말 공급부족현상이 빚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인사들은 속성상 낙관적으로 전망하게 마련이라고 치더라도 반도체경기 예측기관인 데이터퀘스트도 그즈음 2002년까지 D램 산업이 호황을 누릴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달 초반까지만 해도 반도체 전문 애널리스트들의 전망 역시 온통 장밋빛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한국의 수출 주력인 64메가 D램 국제 현물가격은 지난 7월13일 9.22달러로 정점을 기록한 이후 곤두박질쳤다.

세계최대 메모리 생산업체인 삼성전자의 주가도 이날 39만4천원으로 최고점을 치고 난뒤 동반하락했다.

지난주 아시아 현물시장에서 64메가 D램과 1백28메가 D램의 현물가격은 이미 4달러와 10달러가 붕괴됐다.

반도체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장밋빛 전망이 무참히 빗나가버린 이유를 놓고 한동안 의견이 분분했지만 하락세가 장기화되면서 수급불균형에 따른 구조적 하락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반도체 가격전망이 힘든 이유는 가격결정구조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을 주도하는 주력제품의 가격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미래 주도상품과 수요예측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요컨대 기술 진보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오늘의 주도상품이 언제까지 시장을 끌고나갈지,수요가 지속될 지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예를 들어 0.20미크론(1백만분의1m) 라인을 0.18미크론 공정으로 바꾸면 생산량이 40∼50% 가량 늘어난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지 않는 이상 D램 가격은 첫발매때 가장 높고 시간이 흐를수록 떨어지게 마련이다.

정확한 수요예측도 어렵다.

용처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결과론적 분석만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여기에 제품간 세대교체기에 빚어지는 시장 내부의 혼란도 가격 급등락의 요인이 된다.

시장 주력제품이 1백28메가로 이동하면 64메가 D램값은 폭락하게 마련이다.

이런 과정이 5년마다 반복되는 게 바로 반도체 사이클이다.

산업연구원 주대영 연구위원은 "올해 PC 및 휴대폰 수요를 지나치게 높게 잡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D램업계는 올해 PC시장 규모를 1억5천만대 정도로 예상했다.

그러나 연말까지 판매되는 PC규모는 1억3천만대를 밑돌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D램의 63∼65%를 소화하는 PC시장의 성장이 둔화되면 D램 메이커는 타격을 입게 된다.

D램가격의 결정권도 PC메이커에 넘어간다.

가격 결정권을 빼앗기면 D램 가격은 PC업체에 유리하게 결정될 수밖에 없다.

반도체업체의 마케팅 담당자들조차 반도체 가격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반응한다.

삼성전자 안기종 부장은 "D램 수요증가율이 예전같지 않다"며 "단기간에 D램값이 많이 떨어진 만큼 반등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메리츠증권 최석포 연구위원은 "대만 등 일부 메이커들이 덤핑으로 제품을 팔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전세계적으로 5∼6% 가량의 잠재적 공급초과현상을 빚고 있다"고 추정했다.

반도체 사이클을 감안해도 D램값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과거 16메가 D램의 경우 지난 95년 10월 53달러를 기록한 후 34개월동안 하락,98년 7월 1.5달러를 기록했다.

수요 증가세보다 공급증가세가 컸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였다.

내년초 D램값이 상승세로 돌아설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64메가 D램의 경우 4달러대가 깨지면 삼성 등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원가를 위협받게 된다.

출혈을 무릅쓰고 계속 제품을 생산하기 어렵다.

또 D램 가격의 하락은 PC수요를 촉발시킬 수 있다.

대우증권 전병서 부장은 "내년 3월께부터 수급이 균형을 찾아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도체 가격전망은 엇갈리지만 아직은 하락쪽에 잔뜩 무게가 실려있다.

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