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유언에 따라 국제우호와 평화회담, 전쟁방지를 위해 노력한 개인이나 단체에 주어지는 노벨평화상은 1901년 처음 시상된 이후 올해로 1백회째를 맞았다.

첫 수상자는 적십자를 창설한 장 앙리 뒤낭(스위스)과 국제평화연맹을 창설한 프레데리크 파시(프랑스).

새천년 첫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대중 대통령을 포함, 지금까지 1백4명(적십자가 3회 수상)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88명의 개인과 16개 단체가 수상했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19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프랑스가 8명으로 두번째로 많은 수상자를 배출했다.

영국에서도 6명의 수상자를 냈고 스웨덴과 독일 아일랜드 출신도 각각 5명씩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4명, 스위스 이스라엘이 각각 3명, 오스트리아 벨기에 노르웨이 아르헨티나 구(舊)소련 폴란드 동티모르가 각각 2명, 한국 이탈리아 덴마크 네덜란드 캐나다 베트남 일본 이집트 인도 멕시코 코스타리카 티베트 미얀마 과테말라 팔레스타인에서 1명씩 수상했다.

지역별로는 유럽지역이 43명으로 가장 많았고 북미지역이 20명, 아시아 8명,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 각각 5명, 중동지역에서 4명의 수상자를 냈다.

노벨상중 경제 물리 화학 의학 분야의 경우 미국이 대부분 독식해온 것과는 달리 평화상은 당초 취지에 맞게 비교적 국적이나 인종 종교 이념에 구애받지 않고 수상자가 선정되는 편이다.

그동안 앙리 뒤낭, 슈바이처 박사, 마틴 루터 킹 목사, 헨리 키신저, 넬슨 만델라 등 인간의 존엄과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해온 대표적인 인물들이 수상자로 선정돼 왔다.

노벨평화상은 수상자 개인의 영예뿐 아니라 전세계에 인도주의 정신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89년 비폭력 평화적인 방법으로 티베트 독립운동을 펼쳐 온 것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달라이 라마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라마는 노벨상 수상으로 세계적인 종교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부상하는 한편 티베트 독립운동이 전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6년 카를로스 시메네스 벨로 주교와 독립운동가 호세 라모스 오르타의 평화상 수상은 인도네시아에 강제복속됐던 동티모르 분쟁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세계 각국의 지원속에 결국 독립을 이루는 결실을 낳았다.

그러나 노벨평화상은 지난 1백년동안 무려 16차례나 수상자를 뽑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노벨의 유언 내용에 맞는 후보자가 없거나 1,2차 세계대전 때처럼 세계정세가 불안정해 수상자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수 없어 시상이 보류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는데도 수상을 공식적으로 거부한 사례는 단 한차례 있었다.

베트남전쟁 당시 월맹측 대표단으로 파리평화회담에 파견돼 종전(終戰)을 위해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3년 헨리 키신저와 함께 공동수상자로 지명된 레둑토가 바로 주인공이다.

레둑토가 노벨평화상 수상을 거절한 것은 적성국에서 주는 상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수상을 거부하더라도 일단 수상자로 결정되면 ''수상거부''라는 언급과 함께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는 올라간다.

정치적인 외압 등으로 노벨상 수상자들이 고통을 겪은 사례도 적지않다.

1935년 독일의 정치범이었던 반나치 저술가이자 평화주의자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가 평화상을 수상하자 아돌프 히틀러는 1937년 독일인들의 노벨상 수상을 금지하는 포고령을 내리기도 했다.

노벨평화상은 그러나 국제정세나 정치적 변수 등에 떠밀려 기대에 못미치는 수상자를 내기도 하는 등 잡음도 적지 않았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