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유럽연합(EU)간 조선 통상마찰이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일 한국 정부와의 조선협상이 결렬됐다고 선언하고 ''한국 조선업체의 덤핑 수주''를 무역장벽조사위원회(TBR) 및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와 조선협회측도 유럽 조선소에 대한 현지 정부의 보조금 지급문제를 WTO에 맞제소하는 방안 검토에 착수했다.

◆맞대결 양상=EU측은 한국 조선업체들이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으로 수주에 나섬으로써 세계 조선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특히 일부 부실 조선소들이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자금 지원을 받아 저가 수주에 나서는 것은 명백한 불공정거래 행위라는 주장이다.

EU측은 한국 정부가 덤핑 수주를 숨기기 위해 한국 업체들의 상세한 원가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최근 한국 업체들의 수주가 늘어난 이유는 원화 약세에 따른 가격경쟁력 향상과 지속적인 기술개발로 인한 조달 비용의 감소 덕분"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 한국 업체들이 저가 수주를 할 경우 금융지원 중단을 검토하는 등 EU의 처지를 감안해서 할 만큼 했다는 게 한국 정부의 입장이다.

대우중공업 처리를 계속 문제삼고 있는 데 대해서도 대우중공업 등에 대한 워크아웃은 금융기관이 ''상업적 판단''에 의해 자율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직접적 지원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게다가 EU측이 기업의 핵심 비밀에 속하는 원가구조 공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통상관행상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주문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의 대응 방침=산업자원부 관계자는 "EU측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며 끝내 제소 절차를 밟는다면 우리도 맞제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협상 통로가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며 대화를 통해 타협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국내 업계도 강경 대응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그동안 유럽 조선소들을 의식해 공식 수주발표도 자제해왔지만 EU측의 무리한 요구에 더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형벽 한국조선협회 회장은 "유럽 조선소들도 자국 정부로부터 선가와 연계된 직접 보조금을 받고 있는 만큼 우리측이 불리할 게 없다"며 "만약 제소가 이뤄질 경우 우리도 떳떳하게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는 또 그동안 지속적인 수주를 통해 2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해뒀기 때문에 직접적인 타격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주가격 상승은 불가피하겠지만 원화가 갑자기 강세로 돌아서지 않는 이상 추가 수주에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EU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대우중공업 등은 수주활동에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