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마에서 나는 한 무녀(巫女)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있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애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하고 물었을 때 무녀는 대답했다."난 죽고 싶어"''

이같은 프롤로그로 시작되는 장시는 T S 엘리엇의 유명한 ''황무지''다.

무녀는 신의 사랑으로 영생을 얻지만 영원한 청춘을 달라고 하는 것을 잊었다.

늙어 꼬부라진 무녀는 항아리에 담겨 만인의 구경거리가 됐다.

1922년 발표된 엘리엇의 ''황무지''는 환멸에 관한 서사시다.

''잃어버린 세대''의 ''주제가''로 통하는 이 작품은 문명에 대한 저주를 주제로 한다.

천박한 상업주의와 훼손된 민주주의,''수술대 위에 마취된 환자''처럼 무기력한 ''나''는 커피 스푼으로 인생을 되질할 뿐이다.

그러므로 ''무슨 가지가 돌투성이 가지에서 자라겠는가. 인간의 아들아. 너는 말도, 추측할 수도 없다. 너는 부서진 우상더미만 알기에.
죽은 나무는 피난처가 되지 않고, 귀뚜라미 소리는 위안이 되지 못하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다''

엘리엇은 다시 말한다.

''유령같은 도시.런던교 위를 사람들이 흘러간다. 저렇게 많이, 죽음이 저렇게 많은 사람을 해치웠다고 나는 생각하지 못했다''

엘리엇이 친구인 에즈라 파운드에게 8백행 넘는 시를 넘겨주었을 때 파운드는 절반 이상을 잘라냈다.

그리고 ''영어로 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가 나왔다''고 말했다.

과감한 삭제 때문에 ''황무지''는 현대시중 가장 난해한 작품이 됐다.

그러나 반복되는 다음 구절은 시의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한다.

''내게 말해봐요. 왜 도무지 아무말 안해요. 말해봐요. 당신 무엇을 생각하고 있어요. 무슨 생각을. 무얼. 나는 생각해. 우리가 쥐의 골목에 있다고.죽은 사람들이 뼈를 잃은 골목. 저 소리는 뭐예요.
바람이 뭘 하고 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 당신 몰라요? 아무것도 못봐요? 아무것도 당신은 기억못해요? 당신은 살았어요, 죽었어요? 당신 머리속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나요?''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