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선 '회계법인'] (4) '알고 속고 모르고 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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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제분회사인 D사의 외부감사를 맡았던 공인회계사 K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회사 관계자들의 재고조사에 입회했을 때만 해도 노지에 야적된 밀 목측(目測) 규모가 회사측이 제시한 재고량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회계장부의 입출고 내역을 뜯어보다가 미심쩍은 점을 발견했다.
회사측이 재고량을 부풀렸다는 흔적이 역력했다.
K씨는 회사측을 닥달했고 결국 야적더미의 상당수를 겉부분만 밀로 덮어 놓았다는 실토를 받아냈다.
D사는 실적을 부풀리려고 거짓으로 재고자산을 늘리려 했다가 뒷덜미를 잡힌 것이다.
그러나 재고자산을 조작해 분식하는 사례는 비단 D사만은 아니다.
실제 많은 공인회계사들은 K씨와 유사한 경험을 한두번 겪었노라고 털어놓는다.
감독당국의 감리조사에서도 이 항목의 분식사례가 적발건수의 10%에 이른다.
동양강철의 97회계연도 감사보고서를 살펴보자.
이 회사는 이미 매출로 나간 5백만kg의 알루미늄인고트를 마치 재고로 보관하고 있는 양 장부에 올리는 등의 수법으로 1백32억원의 적자를 22억원 적자로 줄여 놓았다.
외부감사를 맡았던 안건회계법인도 이 사실을 적발하지 못한 채 감사보고서를 냈다가 제재를 당했다.
기업들이 분식회계의 유혹에 시달리는 것은 무엇보다 재무제표 내용이 좋아야 자금조달하기가 여러모로 수월하기 때문이다.
실적이 당장 주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상장사의 경우 분식 유혹이 더 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분식회계는 기업과 외부감사인(공인회계사)의 합작품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기도 한다.
공인회계사가 ''이 회사는 멀쩡하다''고 증빙하더라도 믿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IMF 사태라는 특수상황이 감안된 것이지만 98년 당시 회계법인들로부터 적정 감사의견을 받은 기업 10개중 1개 꼴로 부도가 났다.
공인회계사들이 전혀 멀쩡하지 않은 기업도 멀쩡하다고 도장을 찍어줬다는 얘기다.
기업과 회계법인이 한통속이란 걸 보여준 사례는 많다.
대우통신의 분식회계도 이런 사례로 지적된다.
회사는 실적을 부풀리고 공인회계사는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우통신은 97회계연도 재무제표를 작성하면서 단기차입금을 의도적으로 줄여 잡는 등의 수법으로 2백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음에도 76억원의 흑자를 낸 것처럼 꾸몄다.
계열사인 세진컴퓨터랜드가 완전자본잠식으로 살아남기가 불투명한 데도 이 회사에 꾸어준 돈이나 매출채권을 회수할 수 있는지 여부도 주석에 기재하지 않았다.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를 부실채권에 대해서는 주석에 적어 일반인들이 사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원칙인 데도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외부감사를 맡은 청운회계법인도 이를 바로잡지 못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외자유치를 앞두고 있던 대우통신측이 분식을 눈감아줄 것을 요구했고 고객과의 관계를 감안, 청운회계법인이 회사측의 요구를 들어주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기아자동차의 경우 규모도 규모거니와 분식회계의 결정판이었다.
전사적 차원에서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분식회계에 나선 경우다.
기아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는 91년부터 7년간 장부조작으로 무려 4조5천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손실을 축소시켰다.
당시 7년 동안이나 기아자동차의 외부감사를 맡았던 청운회계법인은 물론 감리를 실시한 금융감독원(당시 증권감독원)조차 부실회계 사실을 찾아내지 못할 정도로 주도면밀했다.
더 큰 문제는 아직도 분식회계와 부실감사가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IMF사태 이후 부실감사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는 데도 감독당국의 감사보고서 감리 결과 지적비율이 줄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실시한 감사보고서 일반감리에서 98년에 15.6%가 잘못을 지적받았다.
그런데 99년에도 지적비율은 13.1%에 달했다.
기업의 결산보고서 10개중 1개는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투명회계가 아직은 요원한 것이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
회사 관계자들의 재고조사에 입회했을 때만 해도 노지에 야적된 밀 목측(目測) 규모가 회사측이 제시한 재고량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회계장부의 입출고 내역을 뜯어보다가 미심쩍은 점을 발견했다.
회사측이 재고량을 부풀렸다는 흔적이 역력했다.
K씨는 회사측을 닥달했고 결국 야적더미의 상당수를 겉부분만 밀로 덮어 놓았다는 실토를 받아냈다.
D사는 실적을 부풀리려고 거짓으로 재고자산을 늘리려 했다가 뒷덜미를 잡힌 것이다.
그러나 재고자산을 조작해 분식하는 사례는 비단 D사만은 아니다.
실제 많은 공인회계사들은 K씨와 유사한 경험을 한두번 겪었노라고 털어놓는다.
감독당국의 감리조사에서도 이 항목의 분식사례가 적발건수의 10%에 이른다.
동양강철의 97회계연도 감사보고서를 살펴보자.
이 회사는 이미 매출로 나간 5백만kg의 알루미늄인고트를 마치 재고로 보관하고 있는 양 장부에 올리는 등의 수법으로 1백32억원의 적자를 22억원 적자로 줄여 놓았다.
외부감사를 맡았던 안건회계법인도 이 사실을 적발하지 못한 채 감사보고서를 냈다가 제재를 당했다.
기업들이 분식회계의 유혹에 시달리는 것은 무엇보다 재무제표 내용이 좋아야 자금조달하기가 여러모로 수월하기 때문이다.
실적이 당장 주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상장사의 경우 분식 유혹이 더 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분식회계는 기업과 외부감사인(공인회계사)의 합작품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기도 한다.
공인회계사가 ''이 회사는 멀쩡하다''고 증빙하더라도 믿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IMF 사태라는 특수상황이 감안된 것이지만 98년 당시 회계법인들로부터 적정 감사의견을 받은 기업 10개중 1개 꼴로 부도가 났다.
공인회계사들이 전혀 멀쩡하지 않은 기업도 멀쩡하다고 도장을 찍어줬다는 얘기다.
기업과 회계법인이 한통속이란 걸 보여준 사례는 많다.
대우통신의 분식회계도 이런 사례로 지적된다.
회사는 실적을 부풀리고 공인회계사는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우통신은 97회계연도 재무제표를 작성하면서 단기차입금을 의도적으로 줄여 잡는 등의 수법으로 2백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음에도 76억원의 흑자를 낸 것처럼 꾸몄다.
계열사인 세진컴퓨터랜드가 완전자본잠식으로 살아남기가 불투명한 데도 이 회사에 꾸어준 돈이나 매출채권을 회수할 수 있는지 여부도 주석에 기재하지 않았다.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를 부실채권에 대해서는 주석에 적어 일반인들이 사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원칙인 데도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외부감사를 맡은 청운회계법인도 이를 바로잡지 못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외자유치를 앞두고 있던 대우통신측이 분식을 눈감아줄 것을 요구했고 고객과의 관계를 감안, 청운회계법인이 회사측의 요구를 들어주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기아자동차의 경우 규모도 규모거니와 분식회계의 결정판이었다.
전사적 차원에서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분식회계에 나선 경우다.
기아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는 91년부터 7년간 장부조작으로 무려 4조5천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손실을 축소시켰다.
당시 7년 동안이나 기아자동차의 외부감사를 맡았던 청운회계법인은 물론 감리를 실시한 금융감독원(당시 증권감독원)조차 부실회계 사실을 찾아내지 못할 정도로 주도면밀했다.
더 큰 문제는 아직도 분식회계와 부실감사가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IMF사태 이후 부실감사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는 데도 감독당국의 감사보고서 감리 결과 지적비율이 줄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실시한 감사보고서 일반감리에서 98년에 15.6%가 잘못을 지적받았다.
그런데 99년에도 지적비율은 13.1%에 달했다.
기업의 결산보고서 10개중 1개는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투명회계가 아직은 요원한 것이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