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속 고비용구조''라는 기업들로서는 최악의 상황이 전개될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추석을 앞두고 대한상공회의소와 공동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업종이나 기업규모를 가리지 않고 전체 산업계에 향후 경영에 대한 위기감이 빠르게 퍼져 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기업들의 반응을 요약하면 "돈이 돌지 않는 상황이 이미 만성화된 터에 앞으로 매출이 줄어들면서 비용부담이 늘어나는 구조가 깊어질 경우 버텨낼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에 비해 위기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중견.중소기업들은 고비용구조에 취약해서 이미 경기후퇴의 사정권내에 진입했다고 대답했다.

대기업 계열사 중에서도 구조조정이 미진한 기업들은 상반기엔 내수호황으로 가까스로 버텼지만 주식시장 침체와 회사채 시장경색이 계속될 경우 부도를 맞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조사를 담당했던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들은 "채산성 악화와 투자위축 등 악순환의 고리를 차단하기 위해선 고비용 구조를 개선해야 하며 이 작업을 미룰 경우 한국경제는 외환위기 직전처럼 국제경쟁력을 급속히 상실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경제위기 불안감 확산 =이번 조사에서 한국경제의 유동성 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고 대답한 기업이 89.0%나 됐다.

이는 기업들이 지난 상반기중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지만 향후 경제기반과 경영환경을 극히 불안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중견.중소기업들중 12.1%가 위기재연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응답, 위기가능성이 없다는 견해(7.7%)를 앞질렀다.

이처럼 향후 경영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자 삼성 등 초우량 기업조차 몸을 사리고 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생산과 직결되는 투자를 빼고는 가능하면 유동성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문조사에서도 투자규모를 그대로 두거나 줄일 것이란 기업 의견이 73.5%로 나타났다.

◆ 추석을 전후한 연쇄부도 우려 =30대 대기업 계열사중 10.7%가 아무리 높은 금리를 줘도 돈을 끌어올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들 기업이 제 때 자금을 융통하지 못할 경우 추석을 전후해 연쇄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대한상의 이현석 경제정책팀장은 분석했다.

설문에 응답한 화섬업체의 자금담당 K상무는 "최근 만기가 돌아온 1백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차환 발행하지 못해 낭패를 볼 뻔했다"며 "주거래 은행에 구걸하다시피해 고비를 넘겼지만 혹시 흑자부도를 내지 않을까 밤잠을 못잔다"고 털어놨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외환위기를 극복한 뒤 비교적 양호했던 자금조달 창구가 추석을 앞두고 신용경색으로 금리가 상승하고 대출기간의 단기화 현상을 보이면서 얼어붙고 있다고 응답했다.

◆ 고비용 구조가 채산성 악화요인 =채산성 악화의 요인으로는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라고 답한 비율이 25.8%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임금상승(17.0%)과 수요업체의 납품단가 인하요구(15.9%)가 차지했다.

대기업들은 임금인상 대신 금리상승을 채산성 악화의 두번째 요인으로 꼽았다.

대외적으로는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가치가 지난 1년동안 7.2% 올라가면서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경쟁국보다 수출 채산성이 악화됐다고 상의는 분석했다.

올들어 7월말까지 임금협상을 마친 기업들의 평균 임금인상률은 7.9%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임금인상률(7.7%)을 넘어서 채산성 악화 요인으로 지적됐다.

◆ 경기 양극화도 심각 =30대 대기업의 경우 채산성이 호전될 것이라는 전망이 55.6%인 반면 중견.중소기업들은 악화될 것이라는 의견이 37.8%로 호전될 전망(27.8%)보다 높게 나타났다.

또 중견.중소기업의 34.5%가 앞으로 내수매출이 ''둔화 내지 크게 둔화''될 것이라고 답해 이들 기업들이 이미 경기후퇴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줬다.

기업들은 고비용 구조의 개선책으로 △금융기관의 BIS비율(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의 탄력 적용 △회사채 만기 연장방안 강구 △에너지세율 인하 △중앙은행의 원화가치의 상승 억제노력 △노동부문의 제도개선 등을 주장했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