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한 아버지와 불륜관계였던 여성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 한 자녀에게 벌금형이 선고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5단독 공현진 판사는 공갈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사망한 자신의 아버지와 B씨가 불륜관계인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이 사실을 이용해 B씨를 협박한 다음 금품을 갈취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A씨는 지난해 4월 1일 오후 1시 30분경 자신의 거주지에서 B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어 자신의 어머니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면서 300만원을 계좌로 송금할 것을 요구했다. B씨는 송금을 하지 않았다. A씨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답장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B씨에게 자신의 집으로 찾아올 것을 재차 요구했다. 그러면서 마치 B씨의 손녀가 다니는 유치원에 찾아갈 것 같은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B씨가 끝까지 돈을 보내지 않으면서 A씨의 범행은 미수에 그쳤다. 공 판사는 A씨가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서도 범행 경위, 협박 내용 등을 고려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오세훈 서울시장(사진·오른쪽)이 모퀘에치 에릭 께아베쯔웨 마시시 보츠와나 대통령(사진·왼쪽)을 만나 스마트도시 구축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오 시장은 현충일인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파트너스하우스에서 마시시 대통령을 만났다. 마시시 대통령은 지난 4~5일 한국-아프리카 정상회의 참여차 서울을 방문했다가 오 시장 면담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츠와나는 196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0달러를 밑돌았지만, 현재는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부국으로 성장했다.오 시장은 이 자리에서 서울의 스마트도시 협력사업을 스마트 인프라, 스마트 서비스, 스마트 시티즌 등으로 나누어 소개했다. 오는 10월 7일부터 9일까지 코엑스에서 개최할 예정인 '서울 스마트 라이프 위크'와 취약 계층을 배려한 약자동행 기술도 언급했다.오 시장은 "중앙정부와의 교류만큼이나 서울과 가보로네(보츠와나 수도) 간 교류도 매우 중요하다"며 "스마트시티, 지식기반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인 교류를 통해 양국 수도가 호혜적인 관계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마시시 대통령은 지식기반경제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면서 "이 분야의 상징과도 같은 서울시와 가보로네시 사이 스마트시티 협력을 위한 교류가 활발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한국과 보츠와나는 1968년 수교했고, 보츠와나 대통령의 서울 방문은 이번이 3번째다. 이날 면담에는 보츠와나의 레모강 크와페 외교장관, 호칠레에네 모라케 주한대사 등도 참석했다.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
최근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로 지목된 이들의 신상과 근황이 온라인상에 퍼지면서 사회적 공분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배우 고(故) 최진실이 당시 피해 여중생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준 사실이 재조명됐다.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전날 '2004년 밀양 성폭행 피해자에게 도움 줬던 최진실'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밀양 성폭행 사건 피해자인 A 양의 법률대리를 무료로 맡았던 강지원 변호사가 2016년 6월 월간조선과 인터뷰한 내용이 담겼다.이에 따르면 최진실은 당시 광고 모델을 맡았던 건설사로부터 품위유지 의무 위반을 이유로 3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 이때 최씨의 변호도 무료로 맡았던 사람이 강 변호사다.하지만 그 시절 '안티 최진실 카페'에서는 무료 변호를 두고 '왜 부자에게 공짜로 변론을 해주냐' '유명 연예인에 대한 특혜가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이에 강 변호사는 결국 최씨에게 수임료를 받기로 하면서 묘안을 생각해 냈다. 받은 수임료를 A양을 돕는 데 쓰기로 한 것이다. 강 변호사에 따르면 최씨 역시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흔쾌히 응한 것으로 전해졌다.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밀양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뒤 난리가 났다. 일단 (A 양을) 피신시켜야 한다고 생각해 탈출을 제안했다. 딸 둘을 어머니와 서울로 이주시켰다"며 "처음에 피해자를 받아주는 학교가 없어 교육청에 '이런 학생을 받아주는 곳이 학교다'라고 항의한 끝에 한 고등학교로 전학했다"고 설명했다.그러면서 "(그때 A 양 가족은) 살림살이 없이 도망 나온 상황이라 먹고살 수가 없었다"며 "내가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