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금융이 시작되는 계기로 봐주십시오"

28일 (주)우방에 대한 신규자금 지원회의가 끝난 직후 서울은행에서 만난 채권단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대구지역의 대표적 건설업체라는 우방의 상징성을 감안하면 자금지원이 부결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이 회사에 대한 자금지원건은 그동안 말이 많았다.

이 회사 이순목 회장은 집권당인 민주당원인데다 지역 유지로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구지역의 대표적 중견 건설업체로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우방의 비중도 적지 않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지난 7월에 우방이 1천5백51억원의 신규자금 지원을 요청했을때부터 은행들은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우방의 재무구조나 사업전망만 보면 부도를 내야 하는데도 몇차례에 걸친 회의는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급기야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우방의 문제는 채권단이 자율적으로 알아서 할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은행들은 주저하면서 우방에 끌려다녔다.

이번 회의는 당초 24일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이틀 전인 22일 김대중 대통령이 경제정책 조정회의에서 "지역경제와 건설경기에 대한 대책을 세우라"는 지시를 했다.

금융권에서는 ''혹시 우방을 겨냥한 발언이 아니냐''며 전전긍긍했다.

김 대통령의 발언 때문인지 우방 회의는 24일에서 25일로, 다시 28일로 계속 연기됐다.

25일 회의를 앞두고는 채권은행 관계자가 금감위에 들어가기도 했다.

채권단의 분위기도 이리저리 쏠렸다.

자금을 지원해도 회생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던 은행들조차 그래도 지원해야 하지 않느냐는 분위기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날 채권단은 자금지원안을 최종 부결시켰다.

"우방이 워크아웃에서 퇴출될 경우의 부작용도 우려했습니다.하지만 기업 부실을 은행이 더이상 떠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은행 퇴출이 남의 일이 아닌데 결국 냉정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회의를 끝내고 나온 채권은행 한관계자의 말이다.

김준현 경제부기자 kim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