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부 두쌍의 라운드를 맡은 날이었죠.

부부임을 감안,남녀 한쌍으로 백을 묶기 위해 백을 드는 순간 돌덩이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내가 아침을 안먹어서인가.

왜 이리 무거운지.

볼을 많이 넣었나.

클럽을 많이 실었나.

그나저나 무거운 백 끌려면 죽겠구나 싶었죠.

클럽 드리면서 이리저리 뒤적여봐도 볼은 많이 없더라고요.

유난히 햇볕도 따가워 땀도 많이 흐르더군요.

무거운 백을 갖고 온 사모님의 남편이 목이 마르신지 저에게 "언니,물 좀 가지고 나온 거 없나요"라고 물었죠.

순간,사모님은 "여보 물 있어요.물 드려요"하시며 백 뒤에서 얼음물 한병을 꺼내시잖아요.

"그런건 언제 챙겼어"하며 남편은 만족한듯 웃으시더군요.

3번홀 앞팀이 티샷을 하고 바로 떠난지라 세컨드샷 할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

사모님이 백뒤에서 또 무언가를 꺼내시더니 "당신 매실차 한잔 드려요? 내가 매실차 얼려왔어요"라고 하더군요.

라운드 나온 손님들은 "그런걸 가져왔어"하시며 돌아가면서 한잔씩 마셨죠.

저도 한잔 얻어먹었고요.

7번 파3홀.

앞팀이 아직 티샷을 하는 중이라 잠시 휴식.

그런데 사모님이 또 백으로 가시더니 이번에는 귤 한봉지를 꺼내서 오시더라고요.

이제 드디어 왜 백이 무거웠는지 감이 잡히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백을 열어보니 얼려온 물병과 매실차병외에 또 ''의문의 얼린 병''이 하나 더 있고 찰떡,초코파이,사탕,초콜릿,샌드위치,밤 삶은것,바나나,귤 등이 가득 들어있더군요.

거의 소풍을 나오셨더군요.

급기야 남편께서도 이 사실을 알고 "아니,뭘 이렇게 가져온거야.언니가 이러면 백이 얼마나 무거워 힘든줄 몰라.언니가 어쩐지 아까부터 끙끙대더라"하며 구박하시더군요.

사모님은 그때부터 풀이 팍 죽고 말았죠.

저는 괜히 제가 미안해져 하나의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죠.

매홀 음식을 꺼내 바로 먹어치워버린거죠.

그랬더니 백이 점점 가벼워지더라고요.

18번홀에 도착해 마지막으로 세번째 ''의문의 병''에 담긴 감식초 물을 따라 주시는 사모님.

힘들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그러나 제발 소풍나온 것처럼 너무 많이 싸들고 오지 마세요.

저희들이 얼음물은 준비해놓고 있답니다.

태광CC 안승희 www.golftop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