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나를 혼자 남겨둬 원망도 많이 했지만 이제 아버지가 북한 최고의 원로학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자랑스럽습니다"

북한의 유명한 국어학자인 류렬(82)씨의 딸 류인자(59.부산시 연제구 연산동 622)씨는 지난 51년 헤어진 아버지와의 상봉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서울에서 살고있던 류씨 가족이 흩어진 것은 지난 51년 1.4후퇴 때.

아버지는 식구들을 외가가 있던 진주로 먼저 내려보내고 어머니 동생 등과 함께 새벽차로 뒤따라 내려오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이 생이별의 시작이었다.

류렬씨는 납북전 홍익대에서 교수생활을 했고 서울대와 고려대에도 출강했다.

북한에서는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한글학자로서 국어사전을 처음으로 편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국어학계의 기념비로 일컬어지는 서적 ''세 나라 시기의 이두(吏讀) 연구''로 유명하다.

김일성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한 뒤 지금은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실장을 맡고 있다.

딸 인자씨는 한 장밖에 남지 않은 아버지의 사진을 꺼내 보이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따뜻한 정을 지닌 인텔리였던 것으로 호상된다"고 말했다.

인자씨는 "30대 초반이었던 아버지가 여든을 훌쩍 넘긴 모습으로 다가올 줄 몰랐다"며 "어머니와 형제들의 소식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라고 울먹였다.

한편 류렬씨의 고향인 경남 산천군 신안면 하정리 상정마을 주민들은 6.25 때 행방불명됐던 고향사람이 북한 최고의 국어학자가 돼 돌아온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족보책을 꺼내보는 등 상봉의 설렘에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