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연극계에 기인이 한명 나타났다.

지난해 사업가에서 소극장 "알과 핵" 대표로 변신한 윤승중(53)씨.

이번에는 연극 "빨간 트럭"의 대본을 쓰고 배우로 출연까지 한다.

갈수록 열악해지는 연극계 현실에 모두들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고 있지만 그는 희망의 싹을 틔우느라 바쁘기만 하다.

"미국에서는 조기은퇴가 일반화돼 있는데 한국은 그렇치 않더군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지배해서 그런지 돈이든 뭐든 움켜쥐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아요.

나중에 훌훌 털고 떠날 때까지 내가 하고픈 일을 할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힘들지만 매력있는 연극판에 뛰어들었습니다"

윤씨는 여성의류 제조업체를 경영하다 1994년 회사경영권을 사원들에게 넘겨주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IMF위기가 닥치면서 그 회사도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걱정이 된 윤씨는 고국을 자주 찾게 됐다.

"주말이면 대학로를 찾아 연극을 보는 데 시간을 다 보냈어요.

젊은 시절 정말 좋아했던 연극을 다시 접하면서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은 것 같은 흥분에 휩싸였습니다.

지난해 "알과 핵"을 설립했는데도 직성이 풀리지 않더군요.

내친 김에 희곡도 쓰기로 마음을 먹었죠"

처음에는 희곡을 쓰는 데 어떤 정형화된 공법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런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용기도 갖게 됐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빨간 트럭".

"열쇠 3개"를 약속한 결혼이 어떻게 파행에 이르게 되고 물질이 얼마나 인격을 기형화하는지 가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윤씨는 "실제로 미국 LA에 살면서 비슷한 사례를 많이 봤던 것이 가슴아프게 남아있었다"고 전한다.

"알과 핵"의 첫 기획작품이어서 진지한 주제의식을 담은 작품을 올리고 싶기도 했다.

"물론 진부한 주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재선택보다 그 소재를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기법적인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진지해서 웃을 수 밖에 없는 연극을 만들고 싶었던 거죠"

소극장 이름을 "알과 핵"으로 지은 것도 이런 그의 지향과 다르지 않다.

"사람의 탄생과 죽음이란 화두가 머릿속에서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란 문제죠.생명의 출발인 알과 물질의 기초인 핵에서 극장이름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는 작품 쓰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해나갈 거라고 말한다.

"그밖에 배우나 연출 등 다른 형태로 1년에 한 편 정도의 연극에 참여하고 싶다"고 소망을 내비친다.

< 장규호 기자 seinit@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