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으로 의료계는 자신들의 요구를 정책에 대폭 반영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불편과 비용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더군다나 의약분업 초기에 계도기간을 두기로 해 사실상 의약분업은 한달간 유예된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그나마 7월 임시국회에서 관련법 개정을 둘러싸고 또다시 의료대란이 빚어질 수 있는 소지는 그대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의료대란의 결과가 이같이 국민부담으로 떠넘겨진 것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의약분업의 준비를 소홀히 한 보건복지부의 무능 때문이라는 게 한결같은 지적이다.

<>의약분업 취지 퇴색=보건복지부는 7월부터 의약분업을 예정대로 실시하되 한달동안 "계도기간"을 두기로 했다.

병.의원과 약국의 준비가 덜 돼 차질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시민단체도 계도기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일부지역에서 모의실험을 했으면서도 또다시 계도기간을 두어 이 기간동안은 "법"이 사문화되게 됐다.

병.의원에서 약을 직접 주거나 약국에서 환자에게 약을 조제해 주어도 처벌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상태에서는 계도기간 동안 복잡하고 불편한 의약분업을 일부러 할 의료기관은 극소수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의약분업의 취지는 지난 18일 복지부가 주사제를 의약분업 대상에서 제외시키면서 이미 빛이 바랬다.

의약분업은 국민들이 가장 많이 오남용하는 항생제와 주사제의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겠다는 것이지만 "의사가 필요하다고 볼 경우"엔 주사제를 그냥 쓰도록 해 "반쪽 분업"이 돼 버렸다.

<>국민부담=의약분업을 앞두고 이미 3차례에 걸쳐 의료보험 수가가 인상됐다.

지난 11월 실거래가상환제 실시 때 수가를 12.8% 올렸고 지난 4월 의원들이 집단휴진을 벌인 뒤 6%,이달에 처방료와 조제료 인상을 위통해 9.2%를 추가로 올렸다.

또 오는 9월까지 3개월동안 의약분업을 실시한 뒤 병.의원과 약국의 손실을 계산해 수가를 올려주는 일정이 잡혀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번 의료대란 과정에서 분출된 의료계의 경영정상화 요구를 수용,내년부터 의보수가를 세차례 더 인상하기로 했다.

의보수가 인상은 결국 의료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재정에서 부담하더라도 국민들의 세금이다.

오는 9월과 내년으로 이어질 의보수가 인상폭을 추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의료계의 경영정상화를 위해서는 최소한 의보료를 1백%이상 인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는 2백60%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불편=현행 약사법에는 약국 등에서 포장된 약을 한알씩 구입할 수 있게 돼잇다.

그러나 이럴 경우 약사들이 일반약을 이용해 임의조제(혼합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약은 최소 판매단위를 30정으로 해야한다는 게 의료계의 주장이다.

정부도 이를 받아들일 태세다.

이렇게 되면 환자들은 훼스탈(소화제)이나 콘택600(종합감기약) 등을 한번에 30알이상씩 사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약을 쓸 일이 얼마나 될 지도 모르면서 유효기간이 제한된 약을 무더기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용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또 의료계는 약국의 "조제 및 판매기록부"를 의무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기록부가 의무화되면 환자들은 약을 살때마다 신상기록을 공개해야 하는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 김도경 기자 infofest@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