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의 해외DR(주식예탁증서)발행이 연기된 것은 가격조건이 맞지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포철 주식을 해외에서 헐값에 팔았을 경우 "알짜배기 공기업 주식(국부)의 유출"이란 비난을 받을 것을 우려해서 민영화지연이라는 부담을 무릅쓰고 매각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왜 포기했나 =정부와 산업은행 등 포철민영화팀이 해외 로드쇼를 위해 비행기에 오르던 12일부터 공교롭게도 해외에서 거래되던 포철 주식의 가격이 한국내 거래 가격보다 떨어지는 역전현상이 벌어졌다.

포철 주식은 통상 해외에서 국내가격보다 10%이상 프리미엄이 얹혀 거래됐다.

하지만 전반적인 미국증시 침체와 한국물에 대한 저평가 여파로 포철DR가격이 12일부터 한국내 거래가격보다 3~5% 정도 싸졌다.

해외매각을 앞둔 포철은 지난 9일 자사주 3%를 매입,소각한다는 호재로 대응했다.

이 덕분에 국내에선 포철 주가가 15%나 뛰었으나 미국 월가에선 10% 오르는 데 그쳤다.

민영화팀은 미국 현지에서 21일 아침6시(한국시각)부터 주식매각가격 협상(프라이싱)에 들어갔으나 "한국거래 가격보다 싸게 팔 수는 없다"며 매각을 포기했다.

<>민영화에 미칠 영향 =정부는 당초 포항제철을 99년말까지 민영화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올 6월말로 시기를 한번 늦춘데 이어 이번에 또다시 연기됐다.

정부당국은 "헐값 매각"을 피하기위해 부득이 매각을 무기연기한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아무래도 공기업민영화 의지가 퇴색하는 느낌을 준다"고 의심한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는 번번이 그럴듯한 이유를 대지만 결과적으로 민영화가 늦어지고있다는데 주목해야한다"고 말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정부가 민영화 대상 공기업의 주식을 제 값을 받고 팔려면 국내외 증시 상황을 면밀히 체크해서 일정을 정해 대비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말하자면 "안팔릴줄 알면서 파는 척했다"는 얘기다.

정부가 매각예정가를 15만원대로 잡은 것이나 최소 1만주이상을 묶어 파는 "블록세일"을 고집한 것도 시장상황에 비추어 "미스"였다는 지적이다.

포철 해외주식매각의 연기는 당장 시장에 악재로 나타났다.

포철 주식은 21일 전날보다 5.4%나 떨어졌다.

투자자들이 민영화를 기대하며 사들었던 공기업 주식을 내다팔 경우 한국통신 한국가스공사 한국중공업 등 다른 공기업 민영화에도 줄줄이 악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민영화연기는 시장악재로 작용하고 그것은 또다시 민영화를 늦추는 빌미로 작용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있는 형국이다.

<>앞으로 일정은 =산자부 관계자는 이와관련,"가격 때문에 해외 DR발행을 연기했지만 포철 민영화를 올해안에 끝낸다는 게 정부의 기본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그러나 포철 주식 6.84% 모두를 해외에서 팔 지는 검토할 내용이라고 밝혀 민영화 방법을 수정할 것임을 시사했다.

남일총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정부가 일정을 자꾸 연기해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잃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98년7월 발표한 포철 민영화 스케줄에 따라 98년12월과 지난해 7월 두 차례 정부와 산은 보유지분 26.7%중 13.87%를 해외DR을 발행,매각한 뒤 작년말 나머지 12.84%를 팔려다 실패했었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