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11시40분.

남북정상회담 취재단을 위한 프레스센터가 마련돼 있는 서울 소공동 호텔롯데 2층은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늦게 남북정상이 공동선언문에 자필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자정이 가깝도록 소식이 없자 "북에서 합의를 거절했다" "서명이 내일로 연기됐다"는 얘기들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1천여명의 내외신 기자들에게서 "쩍쩍" 속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잘 됐었는데..." 안타까웠다.

긴장감이 장내를 휩쓸었고 피곤에 지친 기자들의 눈에는 실핏줄이 섰다.

정확히 자정 2분전.

상황이 급반전됐다.

장내 아나운서가 선언문이 오후 11시20분에 서명됐으며 곧 전문이 도착한다고 전했다.

기자들은 본사로 서둘러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7분 후.

드디어 평양으로부터 공동 선언문이 팩스로 들어왔다.

두장짜리 문건이었다.

선언문을 받아쥔 기자는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정말 해냈구나"

예외가 있을 수 있을까.

센터내 대형 멀티큐브에 두 정상이 서명후 건배하는 장면이 나올 때 기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랬다.

프레스센터에서의 2박3일은 매분 매초가 긴장과 초조,환희와 기대가 교차하는 순간 순간들이었다.

방북단이 북쪽을 향해 이륙했을 때의 긴장감,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순안공항에 나타났을 때의 충격,두 정상이 손을 부여잡았을 때 느꼈던 그 형용못할 환희,서명에 들어간 후 몇시간 동안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을 때의 조바심,선언문을 발표한 후 두 정상이 이를 축하하기 위해 "원샷"했을 때의 통쾌한 기쁨.

이를 지켜본 시민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관련인사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기자들에게 이번 취재는 격한 감정의 변이를 수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경험이었다.

방북단이 돌아왔다.

통일로 가는 수많은 과제들을 새로 안고 왔다.

후속조치마련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한편으로는 정상회담 때문에 잠시 제쳐두었던 경제 현안들도 챙겨야 한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프레스센터를 철수하면서 자문해봤다.

"피곤한가"

곧바로 경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깟 피로야 말할게 뭐 있나. 55년동안 응어리졌던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의 한이 풀어지는 것에 비하면..."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곧 평양을 향해 달릴만큼 가벼웠다.

박수진 경제부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