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회는 왜 수요일 저녁에 오픈할까.

1주일 단위로 전시하던 관례 때문에 한 주의 가운데 날을 택한다.

한 작품 앞에서 미적 감동을 최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상시간은? 오렌지 향기를 음미할 수 있는 2분 정도가 적당하다"

서울 인사동에서 5년째 "갤러리 사비나"를 운영하고 있는 화랑경영인 이명옥(43)씨.

그의 "갤러리 이야기"(명진출판,9천8백원)에는 생동감 넘치는 화랑 분위기와 향기로운 물감냄새가 짙게 배어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화랑문을 여는 전시 첫날의 긴장감,갈수록 커지는 화상의 역할,큐레이터의 참모습,전시홍보,작품판매에 얽힌 얘기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한 예술품이 화가의 손을 떠난 뒤 갤러리를 통해 새 주인과 만나는 과정,전시기획의 뒷얘기,큐레이터 지망생들을 위한 조언까지 담겨 있다.

시인.화가가 되고 싶었던 꿈을 접고 화상으로 거듭난 저자의 삶도 이채롭다.

천재 화가 피카소와 마티스의 실험적인 작품들이 모두 프로 화상의 감식안과 애정으로 빛을 보지 않았던가.

모네의 정신적 후원자이자 경제적 지원자였던 뒤랑 뤼엘 같은 화상이 없었다면 입체파와 인상파의 꽃도 피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대의 뒷모습처럼 화려한 배우들의 모습은 없지만 전시회를 준비하는 갤러리의 낮과 밤도 팽팽한 긴장으로 반복되는 예술의 현장이지요"

갤러리 명칭 "사비나"는 그의 영세명.

창업 때부터 해외 시장을 겨냥해 붙인 이름이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여성 화가와 중세의 전설적인 조각가 이름이 사비나였다는 걸 알고 그는 미술과 뗄 수 없는 운명임을 절감했다고 한다.

후발주자로서의 어려움은 굵직한 기획전으로 극복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국내 화가 작품을 모아 예술의전당에서 연 국내 최초의 "교과서 미술전"이나 신년초에 그 해의 동물을 주제로 마련한 "띠전",영화 "시네마천국"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키스전",신문 스크랩을 보다가 착상한 "일기예보전"등은 숱한 화제를 모았다.

이번 책에는 그동안 전시한 작품들의 컬러 도판을 페이지마다 싣고 올컬러로 편집해 읽는 재미뿐만 아니라 보는 즐거움까지 선사했다.

글솜씨도 매끄럽다.

그는 "색색이 고운 꽃들로 누벼진 동네 야산의 아름다움에 가슴이 배일 것 같다"며 "꽃향기와 살을 섞는 저 바람처럼 영원한 예술의 향기 속에서 살 수"있기를 소망한다.

특히 미켈란젤로의 말을 인용한 마지막 구절이 긴 여운을 남긴다.

"아름다움은 나를 몰아서 하늘을 향하게 한다.

아름다움밖에는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산채로 혼의 전당에 들어선다"

<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