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년대말 파업 당시 회사 곳곳에 "개밥도 서러운데 닭장이 웬말인가"하는 격문이 나붙었다. 기숙사를 닭장으로 식당밥을 개밥으로 비유할 정도로 불만이 컸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LG트윈타워 15층 회의실.

지난 87년과 89년 두차례의 파업으로 6천억원의 매출손실을 기록했던 LG전자가 국내 최고수준의 노사관계를 이룩한 과정을 되돌아보고 향후 과제를 점검하는 ''신노경문화 현장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정병철 사장과 장석춘 노조위원장을 비롯, LG정보통신 등 6개 계열사의 노사대표도 참석했다.

한만진 LG전자 상무는 "지속적인 노경협력 활동에 힘입어 지난 3월 노경 대표가 파트너의 의견을 존중하며 경영과제를 함께 해결한다는 내용의 ''노경리더상''에 서명했다"고 보고했다.

지난 10여년간 LG전자는 ''노경협력''에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노사''란 단어에 대립적이고 수직적인 의미가 담겨있다며 맡은 역할만 다를뿐 수평적인 관계를 뜻한다는 ''노경''으로 바꾸었다.

구자홍 부회장은 생산현장에서 근로자와 함께 일했다.

쉬는 시간엔 직원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퇴근 후에는 막걸리를 같이 마시면서 노조로부터 신뢰를 얻어냈다.

임단협 과정에서 노조가 열악한 현장에서 일하는만큼 현장수당을 달라고 요구하자 구 부회장은 아예 작업환경 자체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하고 실천에 옮겼다.

경영정보의 신속한 공유를 위해 노경협의회는 물론 사보 조회 간담회 등을 최대한 활용했다.

''스피크-업''제도를 신설, 현장의 목소리가 곧바로 최고경영자에게 전달되고 조치결과도 열흘이내 통보되도록 했다.

협상문화 개선에도 주력했다.

테이블에 발가벗은 남녀조각상을 갖다 놓은뒤 줄 것은 서로 화끈하게 준뒤 초우량LG라는 옷을 입히자고 유도했다.

뒤풀이 자리에선 물에 담궈 라벨이 떨어진 소주에 ''노경불이주''라는 브랜드를 붙여 마셨다.

노조도 ''제 역할 다하기''에 나섰다.

지난 93년에는 간부들이 광고모델로 출연, 품질과 생산은 우리가 책임지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1월 4일에는 올해 임금교섭을 마친뒤 노조위원장이 노조가 사업의 파트너로 제몫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해외법인장에게 보내기도 했다.

탄탄한 노경협력 덕택에 근로자 1인당 생산성은 지난 90년 7천9백만원에서 지난해에는 4억4천8백만원으로 급증했다.

주요 제품 불량률도 지난 90년 17.1%에서 98년에는 0.81%로 낮아졌다.

최승욱 기자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