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바로 이 방에서 지난주 사위애와 함께 C의원과 안기부장을 만났지"

4년 전 집권자의 사돈인 윤 회장이 바로 이 방에서 한 말이 바로 어제 일어났던 일처럼 백인홍의 뇌리에서 재생되었다.

"네 분이서 자주 만나십니까?"

윤 회장이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것 같아 분위기를 돋우려고 백인홍이 4년 전 그날 윤 회장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지"

윤 회장이 의젓하게 말했다.

백인홍은 속으로 참 한심한 인기부장도 있다고 생각했다.

국가정보기관의 총수격인 안기부장이 권력자의 사돈과 권력자의 나이 어린 아들과 당요직 인사와 한 달에 한 번씩 만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4년 전 그때만 하더라도 그들 네 사람이 국가의 주요 인사정책을 주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백인홍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각하도 자주 뵙지요?"

권혁배가 물었다.

"그분 내외가 우리집에 일주일에 한 번씩 들르지"

"각하 내외분을 어떻게 모십니까?"

사돈끼리 만나 어떻게 저녁 시간을 보낼까 궁금하여 던진 질문이었다.

"내가 머리를 좀 썼지"

"어떻게요?"

백인홍이 물었다.

"응접실 벽에다 큰 스크린을 장치하고 고성능 스피커를 달았지.전문가한테 부탁해서 지난 한 주 동안의 뉴스필름을 편집해 두 분이 나오는 화면만 모았지.두 분이 현관에 들어오는 순간 꽈꽝 하고 스피커에서 음악이 터져나오게 하고.."

윤 회장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두 팔을 들었다 놓았다.

"두 분이 기분 좋아하며 들어와 응접실 소파에 앉으시면 그때부터는 편집된 뉴스필름이 돌아가지"

백인홍은 4년 전 그때, 매일 뉴스에 짤막하게 나오는 것이 불만이었을 텐데 그들 두 사람만 나오는 뉴스를 다시 보며 흡족해했을 권력자 부부의 표정을 상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근데 말이야.지난주에는 안사돈의 강짜 때문에 그분이 혼이 났지"

"어떻게요?"

"클린턴 대통령 부부와 만나는 장면이 나왔는데 말이야,글쎄 각하가 느닷없이 하, 힐러리,참 예쁘게 생겼단 말이야 라고 했지 않았겠어.그랬더니 안사돈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저런. 저런. 여하튼 저 양반은 그 버릇은 못 고친단 말이야 하면서 생떼를 부려 혼이 났지"

"각하께서는 아직도 그 힘이 대단하시지요?"

"말도 마.새벽마다 조깅을 하시지.맨손체조를 하면서 말이야.."

윤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를 벌리고 목을 다리 사이로 집어넣으려다가 말고 앗 소리를 내며 허리를 부여잡더니,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분은 머리가 가랑이 사이로 확확 지나간단 말이야.그러니 힘이 넘쳐 죽을 지경일 거야"

4년 전 이 방에서 그들은 유쾌히 웃어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