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상무가 풍기는 인상은 조용하고 차분하다.

그러나 직원들은 그가 겉으로는 순해도 "독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외유내강"의 전형이다.

어려움이 있어도 꿋꿋이 밀고 나간다.

바이오사업에 발들여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94년말.

파리에서 열린 화장품전시회 "인-코스메틱스"는 그와 그의 연구원들을 울렸다.

하필이면 그때 광우병 파동이 유럽을 휩쓸었다.

소의 뇌성분을 이용해 스핑고리피드를 분리정제하는 기술을 선보이려던 그들은 어느 회사도 소의 뇌를 이용한 화장품은 못쓰겠다고 기피하는 바람에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두산기술원의 기술을 원용,3년뒤 효모를 이용해 스핑고리피드를 추출해내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이를 사업화할 시점에 다시 IMF위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연구소 조직이 와해될 위기에 처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그같은 집념이 결실을 맺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본인의 모습은 "합리적인 사람""협력하는 사람"이다.

연구원들을 통솔하는데는 최대한 그들의 창의성과 자율을 존중하려 애쓴다.

고정관념은 집어던진다.

예컨대 NIH(not invented here)같은 사고는 그와는 거리가 먼 얘기다.

좋은 결과를 빨리,경제적으로 얻을 수 있다면 과감히 다른 연구소와도 손을 잡는다 그의 개인사에서도 그같은 면이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그의 집안은 원래 불교적인 집안이었다.

대학교 시험을 치고나서는 중광스님과 설악산에 놀러가기도 했다.

중광은 그가 "대사가 될 상"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지금 소망교회 집사를 맡고 있다.

부인이 교회에 다니는 것이 계기가 됐다.

집안의 평화를 위한 합리적인 판단이었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