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근무했던 조달청의 예를 들어보겠다. 주사보는 일반 사무용품,
주사는 컴퓨터처럼 더 비싼 물건, 사무관 서기관으로 직급이 올라갈수록
비행기와 같은 고가의 물품 구매를 담당하는 방식으로 조달청 직원의 업무가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각 분야별, 담당별로 구매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안된다. 현재와 같은 수직적 조직체계에서 하위직으로 들어와
고생끝에 직급이 높아지면 모두 구체적인 업무대신 결제만 하기를 원한다"

정부개혁을 주도해온 최종찬 기획예산처 차관이 정부.행정개혁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면서 한 말이다.

최차관의 말을 조금 더 전해보자.

"중앙부처도 마찬가지다. 건설교통부를 한 예로 들어보자. 가령 주택정책을
오래 담당해온 공무원이 갑자기 항공국장이 된다. 항공관련 국제회의에 나가
제대로 말을 하겠는가. 그렇다보니 간부들이 회의에라도 가게 되면 해당업무
실무자들을 대거 데리고 다니는 진풍경이 빚어진다. 협상장의 외국 파트너
들은 모두 전문가들이다"

그렇다면 기획예산처에 대한 시각은 어떤가.

"일선 세무서에서 민원인들에게 사업자 등록증이나 떼어주는 한산한 직원
이나 한진 탈세조사에서 항공기의 국제거래를 밝히느라 밤을 새우며 복잡한
리베이트를 밝혀낸 본청의 전문가나 같은 월급을 받는다. 단지 동일 직급이
라는 이유에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기획예산처 예산실장을 만났다.
답은 국세청만 예외로 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황수웅 국세청 차장의 말이다.

그는 "인건비 예산을 더 달라는 것이 아니다. 같은 예산내에서 일을 많이
하는 직원, 더 어려운 업무 담당자에게 더 많이 줄 수 있도록 국세청장이
재량껏 인건비를 자체 조절하겠다"고 했지만 다른 부처와 균형때문에 "불가"
라는 대답을 들었다.

공공부문, 특히 정부의 조직과 행정에 대한 구조조정이 시작된지 2년이
지났다.

공무원들을 몇명 감축했다, 자리를 몇개 줄였다는 외형 숫자로 개혁의
점수를 매길 수는 없다.

공무원들의 업무 행태가 변했는가, 일이 많은 공무원에게는 더 나은 대우를
해주는 시스템인가등에 대한 대답이 개혁의 성적표가 될 것이다.

정부 안에 있는 이들 고위공직자의 진단은 이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 허원순 경제부 기자 huhws@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