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공식 정치활동에 들어갔다.

재계는 14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경제 5단체장 회의와 경제단체협의회 정기
총회를 잇따라 열고 정치활동 창구인 의정평가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조남홍 경총 상근 부회장은 이날 회의가 끝난후 기자회견을 갖고 "노동계의
무분별한 정치활동을 방어하고 산업평화를 지키기 위해 17명으로 된 의정평가
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날 위촉된 의정평가위원은 어윤배 숭실대 총장, 신수식 고려대 노동
대학원장, 김대모 중앙대 교수, 신태범 고려종합운수회장, 박종규 전
바른경제동우회회장, 이휘영 세계인재개발원회장, 차상필 전 대한상의
부회장, 양삼승 법무법인 화백대표, 김경오 니트연합회회장, 변도은
한국경제신문 논설고문, 배병휴 경제풍월대표, 박창래 전 언론인 등과 경제
5단체 상근부회장 등 모두 17명이다.

의정평가위원회는 이달중 발족회의를 열고 오는 3월중 2차 회의를 열어
본격 의정평가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위원회는 앞으로 국회 환경노동위 보건복지위 등 노동관련 상임위 소속
의원 60여명을 대상으로 평가활동을 벌이게 된다.

조남홍 부회장은 "의정평가위은 노동계의 정치활동정도에 따라 활동수위를
조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 출범 배경 =경단협의 의정평가위원회 출범은 노동계의 정치활동에
상응하는 목소리를 공식화하겠다는 재계의 출사표나 다름없다.

경제계는 자신들이 의정평가활동에 나선 것도 지난해 12월 노동계의 상급
단체와 일부 친노동계적 성향을 가진 의원들에 의해 추진된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등 시대에 역행하는 불합리한 노동법 개정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

경제 5단체장도 이날 당분간 노사문제와 국한한 의정평가활동에 주력,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밝혔다.

이와함께 정치감시및 평가체제를 상시 가동해서 정당이나 국회의원들이
인기영합주의(populism)에 지나치게 편승해서 기업배타적인 정치풍토가
조성되는 것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복안도 깔고 있다.

물론 경제계는 의정평가활동이 재벌의 정경유착 등으로 잘못 비쳐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할 계획이다.

<> 구체적인 활동방향 =의정평가위는 우선 "노조전임자" 문제에 대한
입후보자의 의식과 의정활동내용을 주로 평가하게 된다.

평가항목에는 <>시장경제적 마인드 <>노사관계 기본원칙(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위반되는 입법활동 참여여부 <>노동계의 부당한 요구나 주장의
대변 및 동조발언여부 <>합리성을 상실한 대중적 인기영합도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의정평가위는 2월중 1차 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평가항목을 정할 방침이다.

조남홍 경총 부회장은 "불특정 다수에게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경제단체
간행물의 의정활동란을 통해 회원사에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제계가 평가활동결과를 회원사간 공유하는 수준으로 결정한 것은 정치활동
의 수위를 조절하면서 소기의 목적으로 달성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물론 경제계가 벌이는 정치활동의 내용과 강도는 노동계의 정치활동 수위에
따라 탄력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테면 노동계가 총선을 앞두고 낙천.낙선인사의 명단을 공개하는 과정
에서 건전한 정치인이 대상에 포함될 경우 경제계는 이에 대응한 석명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경제계의 의정평가활동이 노사문제에 국한해 제한적으로 이뤄져도 그 영향력
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의정평가위의 평가결과 및 관련 정보가 총 2백85만개의 회원사(복수
가입 포함)에 직접 전달된다.

경제계는 이 평가결과가 정치인들의 후원회 모금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재경위 산업자원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등의
상임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국회의원들은 경제계가 벌이는 의정평가활동의 주
타깃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 노동계 반응 =경제계의 의정평가활동과 관련, 민주노총은 성명서를 내고
"정경유착으로 부패한 정치권이 더 부패에 빠지고 부유층만 대변해온 정치권
에 또다시 재벌의 입김이 강력히 작용하게 돼 정치발전에 큰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판단돼 이를 즉각 철회하고 자숙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노총도 이날 서울 대흥동 경총회관에서 조합원 5백명이 참가, "금권
선거 정경유착 경제5단체 규탄대회"를 열었다.

< 이익원 기자 ikle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