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5천개, 나스닥 상장 2개"

올해 한국 벤처산업의 성적표다.

올들어 벤처산업은 가파른 성장을 했다.

지난해부터 벤처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벤처기업이 월 평균 2백50개씩 생겨나
12월말로 5천개에 육박했다.

벤처기업 수에서 벤처 선진국인 대만(1천2백여개) 이스라엘(1천여개)을
훨씬 앞질렀고 일본(4천7백여개)도 제쳤다.

지난 11월에는 두루넷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함으로써 한국 벤처가 사실상
세계 무대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두루넷의 나스닥 직상장과 미래산업의 부분상장은 올해 벤처산업계 최고
소득이었다.

이같은 양적인 측면에서의 벤처 성장은 놀랄 만한 것이다.

미국 영국 말레이시아 등 지구촌 곳곳에서 벤처붐이 일고 있지만 세계적
으로 이런 사례가 없다.

모험과 도전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기질에 벤처산업이 적합하다는 분석이
옳다는 것을 입증해준 셈이다.

벤처기업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과 엔젤조합도 상당한 성장을 했다.

벤처캐피털업계의 간판격인 창업투자사는 1년여 사이에 10개 이상 새로
생겨났다.

지난해 투자여력이 없어 대부분 개점휴업 상태였던 창투업계는 투자조합
결성, 정부 벤처자금 지원 등에 힘입어 회사별로 통상 1백억원 이상의 투자
여력을 확보했다.

벤처투자가 황금알을 낳는 재테크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비상장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유행처럼 번져갔다.

대기업 은행 투신사 등은 물론 종금사 파이낸스 신용금고까지 수백억원의
자금을 벤처투자 용도로 책정해 벤처캐피털 기능을 했다.

일부 대기업과 은행 등은 수백억원의 투자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이같은 양적 성장은 코스닥시장 활성화가 결정적 요인이었다.

코스닥 활성화 문제는 벤처산업계 종사자들이 몇년 전부터 줄곧 강조해온
핵심 사안.

투자회수 시장인 코스닥이 죽어 있는데 누가 벤처기업 투자에 적극
나서겠느냐며 투자업계 사람들은 항변하곤 했다.

정부는 지난해 환란으로 크게 위축된 나라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한 대안
으로 벤처키우기에 힘을 쏟았다.

정부 부처들이 경쟁적으로 벤처자금을 지원한 것은 물론 입지 인력 등
벤처창업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시책을 폈다.

그러나 코스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는 시책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을
정부 관계자들은 절감했다.

결국 정부는 올 2.4분기부터 코스닥 활성화를 위해 코스닥 벤처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 등 파격적인 대책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3월부터 코스닥은 서서히 달아올랐고 하반기 한차례 조정을 거쳐 다시
가열됐다.

코스닥 등록을 미뤘거나 계획하지도 않았던 수백개 벤처기업들이 코스닥을
향해 줄을 섰다.

시장에 올리기만 하면 주가가 급등하는 사례가 빈발하자 이 참에 한몫 잡아
보려는 "도덕적 해이"도 난무했다.

코스닥 활성화는 벤처창업을 진작시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부정적
인 측면도 적지 않았다.

다분히 투기장화되면서 건전한 투자자들을 위한 시장이 아니라 작전세력의
잔치판이 되는 양상을 띠곤 했다.

이에 정부가 최근 코스닥 건전화대책을 내놓았으나 우량기업과 불량기업간
주가차별화를 심화시켰을 뿐 투기장화를 막지는 못했다.

결국 코스닥의 분위기를 뒤흔든 정부 시책에 모든 것이 좌우될 정도로
한국의 벤처산업은 정부 주도적이었고 이 점이 한계로 드러났다.

이제 벤처 무드는 무르익었다.

인프라 구축도 어느 정도 이뤄졌다.

따라서 2000년부터는 정부의 기능과 역할이 축소돼야 한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신 벤처가 건전하게 자생할 수 있는 문화토양을 가꾸는데 정부 업계
모두가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 문병환 기자 moon@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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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년 벤처산업 주요 일지 >

<> 99년 3월 금융감독원, 코스닥 등록요건 대폭 완화
<> 99년 3월 재경부, 코스닥시장 활성화방안 마련
<> 99년 4월 한경.벤처캐피탈협회 "아시안 벤처포럼 99" 개최
<> 99년 5월 재경부 "코스닥 7백50개 기업 신규등록" 방안
<> 99년 6월 중소기업청 벤처기업 국내 벤처정책과 신설
<> 99년 6월 벤처기업 확인절차 및 벤처기업 범위 변경
<> 99년 6월 코스닥 시가총액 20조원 돌파
<> 99년 6월 코스닥 기업 대주주, 등록후 6개월간 주식 10% 이상 매각금지
규정
<> 99년 7월 벤처기업 확인요령중 매출액 기준 설정 및 평가기관 추가지정,
문화관광 분야 신기술사업범위 설정(신설)
<> 99년 8월 금융감독위원회 "벤처기업 유.무상증자제한 규정" 마련
<> 99년 11월 두루넷 미래산업, 미국 나스닥 상장
<> 99년 12월 중기청, 벤처기업 확인요건 및 확인절차 강화
<> 99년 12월 중기청 "벤처기업 6년 졸업제" 도입
<> 99년 12월 재경부, 코스닥 건전화대책 마련
<> 99년 12월 주가 1백만원(액면가 5천원 기준) 이상 코스닥 황제주 4개사
등장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