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삭은 흙벽에 매달려
찬바람에 물기 죄다 지우고
베베 말라가면서
그저, 한겨울 따뜻한 죽 한 그릇 될 수 있다면...

윤중호(1956~) 시집 "청산을 부른다" 에서

-----------------------------------------------------------------------

너덜너덜 반쯤 떨어져 나간 흙벽에 매달려서 찬바람에 말라가고 있는
시래기는 초겨울 우리 농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품이다.

물론 이 시는 그 시래기를 가지고 농촌 풍물을 그리려 한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그것 속에서 사람이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내 삶이 비록 이렇게 베베 말라가지만 추운 한겨울 따뜻한 죽 한 그릇이
되어 남의 상에 놓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메시지가 이 시에 담겨
있다.

신경림 시인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