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 작가 >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길을 걸으면 생각이 난다. 헤어지던 아픔보다 처음
만난 순간들이 잔잔하게 물결이 된다"

이 노래.

아팠던 이별의 순간은 고의적으로라도 잊고, 처음 만난 환희의 순간만을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 누구나의 생리.

"장프로"의 비애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장프로-"

성이 장씨가 아니라 "연습장에서만 프로"인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연습장에선 프로못지 않은 샷들을 쏘아대는 장프로.

필드에만 나가면 예외없이 이런 말을 내뱉으며 플레이를 마치곤 한다.

"어라? 어제 연습장에서는 정말 잘 맞았는데..."

나 역시 그 장프로중의 한명이다.

얼마전 플레이.

전날 연습장에서 "뻥뻥" 나가주던 드라이버샷만을 떠올리고 티잉그라운드에
올랐다.

어깨가 저리도록 연습한 드라이버샷이었다.

그러나 첫홀부터 불꽃까지 튀는 심한 뒤땅샷을 냈다.

마치 가슴이 찍히는 듯 했다.

결국 18번홀이 끝나도록 어제 연습장에서의 그 빛나던 샷은 고작 서너개
홀에서밖에 터져주지 않았다.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연습장에서는 잘되던 샷이 필드에만 나오면 이
모양이냐?"며 분개하는 내게 한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라. 네가 정말 연습장에서 친 모든 샷이
완벽했었는지. 연습장에서 신발을 갈아신고 친 처음 10개의 볼을 떠올려봐라.
제1구는 지독한 슬라이스이다. 제2구는 이를 바로 잡는다고 훅을 낸다.
그리고 제3구는 방향을 맞추는가 싶더니 뒤땅을 치고. 네번째에 가서야
그나마 자리잡힌 샷을 하게 된다. 거기에 거리까지 좀 내려면 초기볼 20개
정도는 그냥 날려보내고 만다. 그런데 보통 골퍼들은 그 불안정한 샷은 내
샷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초기미스샷 20개는 생각하지 않고 정상궤도에
오른 시점부터만 내 샷으로 받아들이다보니 "나는 연습장에서는 기가 막히게
쳤다"고 기억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말이 맞았다.

나는 연습장에서 얼마나 많은 미스샷 후에 잘된 샷하나를 얻었던가.

그리고 필드에서 그 샷이 바로 터지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내가 장프로를 면할 수 있는 답이 나왔다.

연습장에서도 진정한 고수는 제1구부터 미스샷이 없을뿐더러 그
미스샷까지도 자기 실력으로 받아들이는 경지가 돼야 한다.

하수는 잘된 것만을 기억하고 고수는 부족한 것을 떠올린다고 하지 않던가.

미스샷을 잊고, 기쁜 일만 기억하려하는 나는 아직 까마득한 하수다.

하지만 그런 미스샷까지 내 실력으로 인정할 때 내 골프는 더 깊어질
것이다.

환희의 순간보다는 아팠던 경험에 의해 삶이 더 깊고 그윽해지는 것처럼.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