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맨 먼저 커피를 마신 사람은 고종 황제였다.
고종은 외세에 밀려 러시아공관으로 피신해 있는 동안 커피를 알게 됐다.
러시아공사 베베르가 고종에게 커피를 소개했고 고종은 커피를 마시며
시름을 잊곤 했다.
덕수궁으로 돌아갈 무렵 고종은 커피 마니아로 변했다.
그는 궁궐안에 정관헌이라는 서양식 건물을 짓고 대신들을 불러 커피를
마시며 국사를 논하곤 했다.
신하들에게 커피를 하사하기도 했다.
당시엔 영어발음을 따서 커피를 "가배차"라 불렀다.
각설탕 속에 커피가 녹아 있는 것이었다.
이 무렵 러시아공관 맞은 편에 손탁이라는 독일 여인이 운영하는 손탁호텔이
있었다.
호텔 안에 있던 정동구락부가 한국 최초의 다방이다.
지금은 손탁호텔도 정동구락부도 모두 사라지고 이화여고 교정안에 기념비만
남아 있다.
일제시대에는 종로 명동 충무로 등 서울 한복판에 하나둘 다방이 생겨났다.
"깃샤텐"이라 불리는 일본식 다방이었다.
이곳에는 주로 지체 높은 관리나 개화된 지식인들이 출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커피는 특권층이 마시는 귀한 음료였고 다방은 이들만의
사교공간이었다.
1927년에는 영화감독 이경손이 "카카듀"라는 다방을 차렸다.
조선인이 경영하는 최초의 다방이었다.
이곳에는 주로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출입했다.
영화배우 복혜숙도 "비너스"라는 다방을 열었다.
서양식 백화점인 미스코시백화점(지금의 신세계백화점) 옥상에도 다방이
생겼다.
30년대로 접어들면서 문인들도 다방 경영에 참여했다.
소설가 이상이 대표적이다.
그는 33년 명륜동에 "제비"라는 다방을 차렸다.
이때의 체험을 토대로 대표작 "날개"를 썼다.
이 소설에는 커피에 관한 이상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소설속에 "커피-좋다"라고 썼다.
이상은 "쓰로" "젝스나인"이라는 다방도 경영했다.
해방 후에는 다방의 중심이 종로에서 명동으로 넘어갔다.
명동에는 "봉선화"를 필두로 곳곳에 다방이 들어섰다.
이 가운데 수필가 전숙희가 문학동료 손소희 유부용 등과 함께 운영한
"마돈나"라는 다방이 유명했다.
문인들은 이곳에서 커피 한잔을 놓고 문학과 삶을 얘기했다.
< 김광현 기자 khkim@ked.co.kr >
[ 도움말 = 동서식품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