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훈장 목련장 정철우씨

"1만5백원을 벌면 1만원을 저축하고 5백원만으로 생활해 왔습니다"

제36회 저축의 날 행사에서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은 정철우 씨는 버는 대로
저축하고 남은 자투리로 사는 것이 몸에 배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고난과 시련을 불굴의 집념으로 극복한 의지의 한국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6.25때 아버지를 여읜 정 씨는 어머니가 재혼하고 누나가 가정 형편상 따로
산 탓에 고아나 다름없이 살아왔다.

게다가 굶기를 밥먹듯 하던 그에게 시각장애까지 찾아왔다.

영양실조 탓이었다.

그는 16살 됐을 때 맹인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서울
맹인학교에 입학했지만 돈이 모자랐다.

그래서 학비를 벌기 위해 단돈 4백원을 받고 피를 팔기도 했다.

"차라리 고아였으면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텐데 호적상 어머니가 있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는 그의 말 속엔 설움이 절로 묻어나있다.

그는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다.

"이 세상은 맹인으로서 혼자 살기에 너무 힘들고 각박했다"고 회고한 정
씨는 맹인학교에서 3개월치 식비 9백원을 못내 서울맹인학교를 포기하고
무료로 운영하는 지방 맹인학교로 쫓겨갔다.

새 학교로 전학간 첫날 정씨는 교무실벽에 점자로 인쇄된 표어에서 인생의
좌우명을 발견했다.

"너도나도 일원이면 삼천만이 삼천만원"

"나도 3천만원을 모아 보란듯이 성공해 보자"고 되뇌였다는 그는 "저축만이
살 길"이라는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시련과 맞설 용기와 힘도 생겼다고 한다.

그는 스무살때 연필 볼펜 껌 등을 팔아 67년 3월 상업은행(현 한빛은행)에
난생 처음으로 저축을 하고 통장을 쥐게 됐다.

행상으로 모은 돈 7천3백원이었다.

이후 지압.침술로 번 돈을 꼬박꼬박 저축해 30년만에 10억여원을 모았다.

그는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며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불우한 소외
계층의 재활의지를 북돋우는데 앞장서고 있다.

극빈 장애인들에게 저축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3백37개의 저축통장(계좌당
2만5천원 입금)을 만들어준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침술원을 운영하면서 건강을 회복한 환자들이 고마움을 표시할 때는
본인이 통장을 개설해준 장애인들에게 적은 돈이라도 입금해달라고 부탁하기
도 한다.

그는 앞으로 5억원을 더 모아 장애인 복지시설을 건립하겠다는 꿈도 갖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물가상승을 생각하면 저축을 못한다고 하지만 안쓰고 은행에
저축하다보면 잘 살게 됩니다"고 말하는 그는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현재 경북 문경침술원 원장으로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