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리네르의 시로 유명한 파리시내 미라보 다리엘 가면 자유의 여신상이
뛰어난 자태를 자랑한다.

이 여신상은 프랑스 혁명 1백주년을 기념해 1889년 프랑스 주재 미국
상공인들이 기증한 양국 우호협력 상징물이다.

프랑스가 미국에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에 대한 답례품이다.

지난달 미라보 다리에서는 자유의 여신상 귀향을 환영하는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프랑스가 1년간 일본에 대여했던 자유의 여신상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파리시청 전용 유람선에서 열린 환영행사에는 프랑스와 일본 고위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샴페인 축배와 함께 화려한 삼색등으로 자유의 여신상을 장식하는 점등식이
거행됐다.

이날 저녁 티베리 파리시장은 프랑스와 일본의 우정은 더욱 깊어만 간다는
즉흥연설도 했다.

프랑스가 일본에 자유의 여신상을 1년간 장기 대여키로 결정한 97년 바로
그해.

한국 교회사 연구소는 외교적 경로를 통해 프랑스 국립도서관측에 한국
고지도 한장을 대여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천주교 행사를 앞두고 전시회용으로 3개월만 대여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연간 수십여점의 국보급 소장품을 외국단체에 빌려준다

하지만 한국의 요청은 일언지하에 거절됐다.

성직자의 이름으로 요청한 공문임에도 불구하고 외규장각 문제가 걸려있어
귀찮다는 것이 이유였다.

일본을 위해서는 땅에 붙어 있는 거대한 동상을 해체하는 작업도 마다하지
않는 프랑스가 규장각 도서 반환을 주장하는 한국에는 복사본 지도 한 장도
빌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2년이 지난 지금도 규장각도서에 대한 프랑스인의 시각은 전혀 변화가 없다.

오히려 이들은 한국이 프랑스 소유 문화재를 돌려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고
본다.

최근 외규장각 도서반환 정부협상이 끝나고 열린 기자회견장에서도 프랑스
대표는 이같은 정서를 그대로 보여줬다.

문제의 발단을 설명해달라는 프랑스 기자의 질문에 살로와 정부대표는
1867년부터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문서에 대해 지난 93년 한국
정부가 갑자기 반환 요청을 해왔다고 답했다.

반환 문제와 관련해서는 규장각 도서가 프랑스에 오게된 역사적 원인부터
규명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즉 프랑스 선교사가 살해된 병인박해만 없었더라면 군함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란 논리다.

병인양요 합리화를 주장하는 프랑스를 보면 외규장각도서가 우리의 품으로
돌아올 날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21세기를 바로 목전에 둔 지금 프랑스는 아직도 제국주의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파리=강혜구특파원 hyeku@coom.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