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고령서도 양민 학살 .. AP통신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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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0년 8월 한국전쟁 당시 후퇴하던 미군이 낙동강의 전략요충인 경북
왜관교와 덕승교(구 고령교)를 폭파하는 과정에서 수백명의 양민을 사망케 한
사실이 미군자료와 미군참전병사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
AP통신이 확인한 미군전사기록과 비밀해제된 미국국방부문서 한국피란민
목격자 등에 따르면 미군 1기갑사단장 호바트 개이 소장과 일부 장교들이
50년 8월3일 북한군 3개사단에 밀려 후퇴하던중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교량폭파명령을 내렸다.
미군은 이에따라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왜관교와 고령군의 덕승교를 폭파,
어린이와 여성 등 많은 피란민들이 그 자리에서 죽거나 익사하게 만들었다.
참전미군병사들은 당시 북한군이 한국인 피란민을 가장해 미군을 공격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으며 교량폭파로 인한 피살자수는 왜관교의 경우 수백명,
덕승교의 경우 수십~수백명에 이른다고 증언했다.
지난 83년 작고한 개이 장군은 당시 1기갑사단장으로 부임한 지 며칠만에
북한군 게릴라들의 격퇴방안을 고심하던중 3일 저녁 15마일(24km) 서쪽에
북한군이 집결했다는 보고를 받고 왜관교 폭파를 지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미군은 경고사격을 통해 한국인 피란민들에게 되돌아 갈 것을
요구했으나 피란행렬이 계속 왜관교를 통해 남쪽으로 밀고 내려오는 바람에
희생자가 적지 않았다고 참전용사들은 전했다.
한편 정부는 한국전 당시 노근리 외에 곳곳에서 미군의 양민학살 사례가
제기됨에 따라 사실 확인을 위해 문제 지역에 대한 기초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5일자 ).
왜관교와 덕승교(구 고령교)를 폭파하는 과정에서 수백명의 양민을 사망케 한
사실이 미군자료와 미군참전병사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
AP통신이 확인한 미군전사기록과 비밀해제된 미국국방부문서 한국피란민
목격자 등에 따르면 미군 1기갑사단장 호바트 개이 소장과 일부 장교들이
50년 8월3일 북한군 3개사단에 밀려 후퇴하던중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교량폭파명령을 내렸다.
미군은 이에따라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왜관교와 고령군의 덕승교를 폭파,
어린이와 여성 등 많은 피란민들이 그 자리에서 죽거나 익사하게 만들었다.
참전미군병사들은 당시 북한군이 한국인 피란민을 가장해 미군을 공격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으며 교량폭파로 인한 피살자수는 왜관교의 경우 수백명,
덕승교의 경우 수십~수백명에 이른다고 증언했다.
지난 83년 작고한 개이 장군은 당시 1기갑사단장으로 부임한 지 며칠만에
북한군 게릴라들의 격퇴방안을 고심하던중 3일 저녁 15마일(24km) 서쪽에
북한군이 집결했다는 보고를 받고 왜관교 폭파를 지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미군은 경고사격을 통해 한국인 피란민들에게 되돌아 갈 것을
요구했으나 피란행렬이 계속 왜관교를 통해 남쪽으로 밀고 내려오는 바람에
희생자가 적지 않았다고 참전용사들은 전했다.
한편 정부는 한국전 당시 노근리 외에 곳곳에서 미군의 양민학살 사례가
제기됨에 따라 사실 확인을 위해 문제 지역에 대한 기초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