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금주 모르게 돈 내줬어도 규정지킨 은행엔 책임없다 ]

기업을 경영하는 신청인은 99년 7월26일 오후 부친의 사망 소식을 듣고 급히
고향에 내려가게 됐다.

회사에는 경리담당 여직원 A가 근무하고 있었다.

다음날 오전 9시께 여직원 A는 사장의 동생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도장없이 은행에서 3천1백만원을 인출해 건네줬다.

그러나 신청인의 동생이라는 사람은 전문사기꾼으로 밝혀졌고 결국 돈을
고스란히 떼이게 됐다.

이에대해 신청인은 여직원에게 돈을 인출하라고 요청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은행이 자신의 도장도 없는 상태에서 예금을 꺼내준 만큼 이를
배상해야 한다며 금융감독원에 구제를 요청해왔다.

<> 사실관계 =금융감독원은 예금전표 등 관련서류를 확인하는 한편 신청인
및 여자 경리직원, 은행 담당직원과 지점장을 동시에 면담해 사실관계를
파악했다.

확인해본 결과 A는 경리담당으로서 이 회사의 은행 입출금 업무를 거의
혼자서 담당해왔다는 것을 알게됐다.

예금을 인출한 당시 A는 회사 사장인 신청인이 부친상을 당해 도장을 제출
하기 어렵다며 은행측에 등록인감없이 돈을 꺼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은행은 예금을 인출해 A에게 건네줬고 이 돈은 다시 사장 동생으로
사칭한 사람에게 넘어갔다.

신청인은 결국 사기를 당하게 됐다.

은행측은 신청인이 부친상을 당한 상태에서 평소 입출금을 전담하던 A가
예금인출을 요구했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없이 이에 응했다고 밝혔다.

은행 내부규정에 따라 편의취급 기록부에 관련내용을 기록하고 지점장
승인을 받아 도장없이 예금을 인출해준 만큼 업무처리상 잘못이 없어 손해
배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처리 결과 =금감원은 이번 분쟁의 경우 신청인과 은행 모두에게 잘못한
책임이 있다고 결론내렸다.

별도의 법률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으로 금융감독원이 직접 나서 분쟁을
조정하기는 어렵고 판단했다.

신청인과 은행은 서로에 대해 과실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청인의 경우 도장없이 예금을 지급한 은행에 대해 예금반환청구권을 가질
수 있다.

은행으로서도 신청인이 회사직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사용자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어느쪽 과실이 더 크냐는 법원에서 가릴 수 밖에 없다는 게 금감원 입장이다

참고로 대법원에서는 이번 분쟁과 유사한 사안에 대해 서로간의 과실책임을
상계할 수 있기 때문에 은행이 배상을 해야할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
(87년 6월23일)을 내린 적이 있다.

<> 시사점 =예금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했거나 장기 입원하게 될 때 이번
분쟁과 같은 피해를 입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금융감독원에 자주 접수되는 분쟁 유형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같은 피해를 막으려면 금융기관 거래고객은 통장이나 등록인감없이 예금
인출을 요구하는 것을 자제하는 게 최선이다.

은행 직원의 경우도 이같은 요구를 받을 때는 규정을 철저히 지키는 가운데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자칫 자의적으로 판단해 처리할 경우 변상책임을 져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김수언 기자 sookim@ >

<>도움말:금융감독원 분쟁조정국 강성범 팀장(문의전화:소비자상담실
02-3786-8534~40)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