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당신이 태어나신 고향에 희로가 왔습니다. 이제 제곁에서 편안히
쉬세요"

민족차별에 맞서 일본 야쿠자 2명을 살해한 죄로 31년6개월간 감옥살이를
마치고 7일 귀국한 재일교포 권희로(71)씨의 사모곡이다.

살아생전 어머니(박득숙씨.98년 타계)의 손을 잡고 꼭 오고 싶어했던
고국땅.

부산 김해공항에 도착해 "오늘부터 한국인으로 살아가겠다"며 꿋꿋한
자세를 보였던 그였지만 영정앞에서는 한 여인의 아들이었다.

영정이 마련된 자비사 3층 법당에 들어선 그는 향불을 붙였다.

그리고 파란 많은 지난 세월을 용서받으려는 듯 합장했다.

반야심경 낭독으로 시작된 박씨의 유해 봉안식 내내 권씨는 몇차례나
가슴에서 용솟음치는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으로 얼굴이 떨렸다.

그리고 한번 감은 두 눈을 뜨지 못했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아무
걱정말고 쉬세요. 어머니처럼 우리말을 배우고 동포생활을 배워 살아갈께요"

야쿠자 2명을 사살하고 여관에서 인질극을 벌일때 찾아와 한복 한벌을
건네며 던진 어머니의 말은 너무도 유명하다.

"일본인에게 붙잡혀 더럽게 죽지말고 깨끗이 자결하라"던 강골의 어머니
였다. 밥 한그릇, 꽁치 한마리라도 나눠먹고, 깡통을 차고 빌어먹더라도
그 때까지 죽을 수 없다던 어머니였다.

권희로씨는 이곳에서 5살때 돌아가신 생부 권명술(31년 사망)씨도 만났다.

비록 위패를 통한 만남이긴 했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신 5살 때까지는
행복했다는 기억이 난다고 권씨는 말했다.

2시간 가량 진행된 봉안식을 마치고 법당을 나선 그의 얼굴은 편안함으로
가득했다.

자비사를 나선 그는 숙소인 부산해운대 조선비치호텔로 향했다.

고국에서 맞는 첫아침을 바다를 보면서 시작하겠다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결정된 숙소였다.

호텔측은 해운대해수욕장과 청사포, 동백섬 등 해운대 일대의 풍경이 가장
잘 보이는 방을 배정했다.

이제 "김의 전쟁"은 끝났다.

"권의 평화"가 시작됐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한국사람"으로 새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불행했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일본인을 용서하겠다는 다짐이었다.

< 부산=김태현 기자 hyun11@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