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전 은행회관.

대우그룹에 돈을 빌려준 채권 금융기관 관계자 1백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렇게 전체 채권단이 만나기는 지난달 26일 이후 두번째다.

이날 2차 대우채권단협의회는 정부의 대우 해법이 잘 풀릴 것같지 않은
조짐을 보여줬다.

회의는 은행권과 투신권이 대우 보증회사채의 이자지급방안을 놓고 티격태격
하다가 끝나고 말았다.

은행은 은행대로, 투신은 투신대로 자기주장만 되풀이했다.

지난달 26일 열린 첫 채권단회의에서 평행선을 달리던 논의가 한치의 진전도
없이 또다시 반복된 것이다.

채권단협의회가 결렬된 뒤 주연을 맡은 제일은행과 감독인 금융감독위원회
기업구조조정위원회 관계자는 할 말을 잊은 듯 했다.

이들은 회의결과에 대해 한마디 설명도 없이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서둘러
자리를 떴다.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워크아웃이 기업가치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부도를 촉발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 와중에 대우계열사에 무역금융을 기존 한도까지 인정하겠다는 자금지원
방안은 물 건너갔다.

당장 대우계열사의 수출전선에 먹구름이 끼고 협력업체가 연쇄도산에 직면해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금융당국이 대우그룹의 워크아웃을 과연 치밀하게 준비해
왔는지 의문이 든다.

보증회사채 이자를 누가 지급할 것이냐는 문제는 이전부터 논란이던 사항이
었다.

이같은 첨예한 쟁점을 힘으로 밀어붙이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면 좋은
말로 "순진"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채권단간 갈등만이 아니다.

구조조정작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실물경제는 휘청거리고 있다.

대우그룹 관계자는 "금융기관이 해주기로 이미 약속한 자금지원마저 기피해
영업이 중단될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하청업체들의 자금난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실물경제를 살리면서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정부의 호언장담이 메아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대우그룹의 구조조정은 한국경제의 명줄을 쥐고 있는 핵심사안이다.

그만큼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현실에 맞지않는 수단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는 점은 이미 대한생명의 사례에서 증명됐다.

정부당국의 책임있고 철저한 대책이 요구된다.

< 김준현 경제부 기자 kimj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