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일 >

<> 39년 경북 영주 출생
<> 57년 경북고 졸업
<> 61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61년 한국은행 입행
<> 86년 뉴욕 사무소장
<> 89년 외환관리부장 자금부장
<> 92년 은행감독원 부원장보
<> 93년 한국은행 이사
<> 97년 금융결제원장
<> 98년 중소기업은행장
<> 부인 신귀범 여사와 1남2녀, 취미는 등산

-----------------------------------------------------------------------

이경재 중소기업은행장을 수식하는 말들은 많다.

"현장밀착형 경영인" "조용한 개혁가" "박사 은행장" 등.

현장밀착형이란 평가를 보자.

그는 지난해 5월 행장으로 부임한 이래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1-2개씩
지점을 찾았다.

3백70여개 지점을 모두 돌고 재차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

이 행장이 지점 방문에서 강조하는 내용은 "수익성".

중소기업금융을 전담하는 국책은행의 역할에 그치지 말고 수익위주의
적극적인 영업을 펼치자는 것이다.

이같은 노력으로 기업은행의 수시입출금식 예금액은 올들어 크게 증가했다.

7월말 현재 자유예금규모는 4조2천억원대로 작년 동기에 비해 51%나 증가
했다.

올 상반기에 사상 최고인 3천2백4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둔 것도 낮은
원가의 자금을 많이 끌어들인 덕분이다.

이 행장은 "정책자금을 중소기업에 배급하는 과거 역할에 안주해서는
미래가 없다"며 "직원에게 인식변화를 강조한 것이 서서히 열매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조용한 개혁가"란 평판도 이 행장의 행보와 맞아 떨어진다.

지난해 10월1일은 한자리수 금리시대가 시작된 날이다.

문을 열어제낀 곳은 바로 기업은행.

이날 기은은 프라임레이트(최우대금리)를 연 11%에서 연 9.95%로 대폭
내렸다.

이 일은 금융권의 금리인하를 촉발해 경제회복을 위한 저금리시대가 시작된
기폭제가 됐다.

이 행장은 "당시 금융시장과 기업의 자금조달을 세세히 파악해 결정했다"며
"한자리수 금리는 불가능하다는 금융계의 인식을 깬 셈"이라고 회고했다.

이 행장은 또 금융권 최초로 여신할당제나 소기업지원을 위한 디스카운트
뱅크, 중소기업로얄어음제도 등 새로운 기업금융기법을 선보이면서 영업망을
소리소문없이 다지고 있다.

"외유내강형"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런 면 때문이다.

박기수 기은노조 부위원장은 "어려운 시절에 부임해 위기를 극복하는데
주춧돌 역할을 한 분"이라고 말했다.

최근 금융감독원 검사에서 부실여신이 많아 경영개선권고조치를 받은게
은행으로선 흠이 됐다.

직원들은IMF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을 앞장서 지원하는 과정에서 생긴
불기피한 일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을 만큼 학구열이 높은 경영자라는 점에서도 돋보인다.

시대변화에 맞는 경영을 펼치기 위한 자세다.

이 행장은 지난해 국민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금리자유화에 대한 고찰을 학위논문을 제출했다.

한국은행 자금부장 시절 금리자유화의 실무주역을 맡았던 경력을 살린
것이다.

한은 뉴욕사무소장때 뉴욕대 경제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닌 일도 그의 향학열
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이 행장은 요즘 은행의 경쟁력 강화에 가장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중소기업금융을 둘러싼 국내외 은행간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
이기 때문이다.

그는 "은행의 소프트웨어적 변화가 경쟁력을 가르는 중요한 관건이 될 것"
며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명재 부산고검장, 이정재 금융감독원부원장의 맏형이다.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과 함께 고등고시 행정과 12회에 합격했지만
관료의 길을 포기하고 한국은행에 들어갔다.

20년 동안 매주 거르지 않고 산에 오르고 있는 것이 그의 건강비결이다.

< 김준현 기자 kimj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