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 작가 >

골프의 이중성을 고발하겠다.

도대체 알수 없는 그 속을 한번 뒤집어 보자.

골프를 접하면서 가장 자주 듣는 소리중 하나가 바로 "마음을 비워라"였다.

그래서 마음을 비웠다.

드라이버샷을 할때는 마음을 비운 샷이 효과를 발휘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린 주변으로 갈수록 마음을 비운 샷은 엉뚱한 방향으로만 흘렀다.

나는 분명 마음을 비운 것인데, 선배들은 "포기해서 그런 것"이라고
몰아붙인다.

그땐 정말 억울하다.

이중성은 골프 중계방송때도 나타난다.

박세리가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그러다가 미스샷이라도 나면 캐스터는 "욕심을 내면 안되죠"라고 말한다.

비슷한 상황에서 버디를 성공시키면 "아, 집중력이 대단해요"라고 한다.

성공하면 집중력 탓, 실패하면 욕심낸 탓.

도대체 그 욕심과 집중의 차이는 뭐란 말인가?

연습장에서도 그렇다.

레슨프로는 내게 "힘을 빼고 치라"는 주문을 한다.

그래서 온몸에 힘을 쫙 빼고 치면, 이번에는 거리가 안난다며 지금보다
2~3배는 힘껏 치라며 다그친다.

그건 분명 종잡을 수 없는 요구다.

어떻게 힘이 빠져 있는데 지금보다 2~3배 스피드를 낸단 말인가.

하도 답답해 "욕심과 집중의 차이"에 대해 한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는 욕심은 자기 능력이상을 바라는 것이고, 집중은 볼을 목표방향으로
보내고야 말겠다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힘을 빼는 것은 몸을 릴리스하게 하는 것이며, 헤드 스피드는
온몸을 잔뜩 꼬아서 풀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분은 열심히 설명해주었지만 내 귀에는 "그말이 그말처럼" 들렸다.

마음을 비우면서도 포기하면 안되고, 집중은 하되 욕심은 내지 말며, 힘을
빼면서도 헤드 스피드는 내야 한다니, 이보다 까다로운 운동이 또 있을까?

하지만 골프가 그런 속성 없이 무조건 "힘과 빠르게"만을 요구하는
운동이었다고 생각해보자.

골프는 힘센 사람만의 손을 들어주었을테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힘들다는 이유로, 애초에 능력이 안된다는 이유로 골프채를 놓았을 것이다.

골프의 까다로운 주문 앞에 오늘도 내 골프는 오락가락하지만 나는 그
이중성을 미워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중성 고발"은 철회할 수밖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