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벌개혁이 상당히 위험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산업을 모르는
사람들이 큰 소리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경제연구소 이한구 소장이 정부의 재벌정책에 대해 공식적으로 신랄한
비판을 제기했다.

대우의 구조조정 때문에 그동안 외부 강연을 자제해 왔다는 이 소장은
24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중견기업연합회(회장 박승복) 초청 조찬
강연회에 참석해 "하고 싶던 말들"을 쏟아냈다.

그는 특히 대우 문제를 빗댄듯 "밖에 나가 열심히 놀다가 좀 다친 아이는
버리고 방안에서 허약하게 자란 자식에게 한국경제의 대를 잇게 할 것이냐"
고 말하기도 했다.

"하반기 경제전망"이란 주제강연 직후 질의응답 과정에서 이 소장이 말한
재벌정책 비판 부분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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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국경제의 주도권은 사실상 정부에 있었다.

하지만 개방경제체제 아래에선 정부가 손을 뗄 수밖에 없다.

그 공백을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메워야 한다.

기업의 경우 의사결정을 하는 경영자들이 바로 한국경제를 이끌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데 그 기업의 경영권이 외국인에게 점차 넘어가고 있다.

한국경제에 대한 외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지고 있는 것이다.

외국자본은 속성상 단기에 수익을 내고 회수하는 데 주력한다.

한국경제의 장기적인 경쟁력은 고려하지 않는다.

때문에 외국자본을 견제할 세력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재벌이 가능한데 그들은 개혁의 대상이므로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처지다.

정부의 최근 기업구조조정 정책은 바로 이런 점에서 상당히 위험하다.

한국경제에 뚫린 공백을 한국기업이 아닌 외국기업에 맡기는 꼴이어서다.

물론 시원치 않은 부실기업은 퇴출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시원치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 퇴출대상을 선별해야 한다.

한 고비만 넘기면 회생할 수 있는 기업까지 모두 내쫓는건 안된다.

예컨대 밖에 나가 뛰어 놀다가 옆집 유리창도 깨고 다치기도 한 자식과
방안에서만 지내 골골한 자식이 있다고 치자.

둘중에 누가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하나.

말썽은 좀 피웠지만 그래도 싸움도 해보고 튼튼한 아이에게 대를 잇게
하는게 옳은 것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다르다.

선진국은 기술자와 자본이 풍부하다.

때문에 어떤 기업이 하나 없어지면 금세 다른 기업이 생겨나 그 공백을
메운다.

그러나 한국은 그게 불가능하지 않은가.

지금은 정부가 기업구조조정을 금융쪽 시각에서만 진행시키고 있다.

산업을 모르는 사람들이 큰 소리 치다보니 이런 결과를 낳는 것이다.

누구도 나서서 비판하지 않으니 관치경제만 강화되고 있다.

재벌개혁을 논할 때 왜 재벌이 생길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재벌은 한국경제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재벌을 개혁하려면 재벌이 탄생한 환경을 바꿔야 한다.

금융구조조정을 확실히 하고, 기술수준도 높이고, 공정경쟁의 틀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재벌을 해체하고 외국에 종속되느냐, 아니면 재벌이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 있도록 경제시스템을 바꾸느냐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답은 자명하지 않은가.

< 차병석 기자 chab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