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벌개혁을 향해 급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역사상 처음으로 재벌을 개혁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히면서 부터다.

이에 정부와 여당은 재벌개혁을 가속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보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대통령이 언급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방지 <>순환출자 및 부당내부거래
억제 <>변칙 상속 차단 등이 주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같은 방안을 내주초에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25일에는 당정 및 채권단 회의를 열기로 했다.

이 자리에는 재계 대표도 참석시켜 상반기중 5대재벌의 재무구조개선약정
이행실적을 점검할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특히 "정부내 일각에서 경영에 실패한 기업총수를 제도적
으로 퇴진시키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에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특히 개혁의 대상인 재벌들은 "재벌 체제의 역기능만 강조되고 순기능은
무시되고 있다"고 반발한다.

학계 등에서도 개혁 드라이브 과정에서 나타나는 <>시장경제 원칙 훼손
<>반기업적 정서 확산 등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또 재벌체제가 해체된 후의 한국경제에 대한 비전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 정부 왜 서두르나 =김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재벌개혁에 강한 의지를
밝힌데에는 국내외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우 삼성자동차 대한생명 등의 처리를 두고 해당기업 또는
기업인들과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또 해외에서는 마침 세계은행(IBRD)의 울펜손 총재 등이 구조개혁이 지체
되는데 대한 우려의 뜻을 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회복이 본격화되면서 기업들의 구조조정 의지가 약화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 터였다.

이에 김 대통령은 해외에 구조개혁의 단호한 의지를 내비치는 한편 기업들
의 구조개혁 고삐를 다잡을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 가속페달 어떤 것이 있나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밝혔듯이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방지, 순환출자 및 부당내부거래 억제, 변칙 상속 차단 등이 기본
골격이다.

우선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방지를 위해 투신,보험 등 제2금융권의 자산운용
규제를 대폭 강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10%로 돼 있는 자기계열 주식투자한도를 7% 정도로 축소하는 방안이
유력시된다.

또 동일계열에 대한 개념을 확대해 실질적인 지배관계가 있는 관련 계열사들
도 규제대상에 포함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비상장금융기관에 대한 사외이사제 도입도 확실시 된다.

순환출자를 억제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재벌들의 출자총액을 제한하는
방식이 예상된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올들어 출자총액 제한제도의 부활문제를 검토해
왔다.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된 이후 총수가 낮은 지분율로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고 유상증자 참여를 통한 부실계열사를 지원하고
있다는게 공정위의 인식이다.

부당내부 거래에 대해서는 역시 공정위가 조사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공정위는 하반기에도 6대 이하 그룹에 대해 5차조사를 계획중이다.

재벌의 경영권 세습을 차단하기 위한 상속.증여세 과세강화 방안은 이미
세제개혁안에 반영됐다.

주식이나 전환사채 등을 통한 편법 증여에 대해 세금을 추징하는 장치가
마련됐다.

또 공익법인을 통한 우회적인 경영권 유지에 대해서도 차단기를 설치했다.

정부는 이같은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면 재벌 문제의 핵심인 경영권
세습이 저절로 해결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 긴장하는 재계 =김 대통령의 경축사 이후 재계는 크게 긴장하고 있다.

개혁의 수위가 어디까지 갈 것이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새로이 제시된 금융지배 규제, 순환출자 및 부당내부거래 억제, 변칙
상속 차단 등 소위 "플러스 3원칙"의 구체적인 정책이 어떻게 나올지 초조해
하는 분위기다.

이중 금융지배와 관련, 재계는 금융사에 대한 건전성 감독이나 경영책임을
묻는데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지만 대기업의 금융업 진입자체를 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5대 그룹이 보유한 제2금융기관이 비대해진 것은 시중유동성이 워낙
풍부한데다 5대 그룹 금융사에 대한 신뢰도가 타 금융사에 비해 더 높기
때문"(유한수 전경련 전무)이라는게 재계의 입장이다.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재계도 그 문제점을 인정하고 있다.

대신 지주회사 설립규제를 완화해 지주회사를 통한 정당한 계열사 지배가
이뤄지도록 유도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용환 전경련 상무는 "대기업의 순환출자는 실권주 방지 등 불가피하게
이뤄진 측면이 강하다"며 "지주회사 설립 요건이 완화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채비율 1백% 이내 감축, 지급보증 완전해소, 자회사에 대한 지주회사의
지분율 50% 이상 등 엄격한 설립요건으로는 지주회사를 설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재계의 이같은 입장과는 별개로 학계 등에서는 정부의 재벌개혁에
비전이 미흡하다는 비판도 하고 있다.

"재벌개혁의 결과가 국가경쟁력 강화로 귀착될 수 있도록 하는 명확한
비전이 필요하다"는게 이들의 지적이다.

또 "시장이 재벌을 원치 않는다"는 김 대통령의 경축사 내용을 들어
"정부가 밀어붙이기 식으로 재벌을 개혁하기보다는 시장의 힘에 의해 재벌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관리감독하는 자세가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