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간절했던 시절로의 추억여행..'그대, 정동진에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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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42)씨의 장편 "그대, 정동진에 가면"(민음사)은 한 폭의 수묵담채화
를 연상시킨다.
주인공은 30대 중반의 작가 박석하.그는 잃어버린 옛사랑을 찾아 추억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정동진"이다.
그곳은 유년시절부터 "정동"으로 불려온 마음의 고향이다.
드라마 속에 나온 관광지 정동진이 아니라 "열여섯살 때 내 삶의 가장 아픈
모습으로 떠나온 정동"의 탄광 마을인 것이다.
봄날 저녁 강릉에서 정동으로 돌아오던 기차 안에서 "나중에 큰 사람이
되어서 꼭 다시 와야 돼"라고 말하던 김미현.
광업소 부소장집 딸과의 추억은 "봄마다 붉은 꽃잎이 바람에 눈처럼 날리던"
화비령 고개를 닮았다.
가난 때문에 진달래꽃을 꺾어 가겟집 아주머니에게 국수를 바꿔오던 시절.
산 언저리에서 그 아이를 몰래 바라볼 때면 마음에 꽃물이 드는 것처럼
황홀했고 그 애가 쳐다볼 땐 금방 어디에라도 몸을 숨기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나폴거리며 뛰어가는 그 아이의 하얀 블라우스와 분홍색 스웨터, 물방울무늬
치마가 꽃보다 더 꽃같던 풍경이 그를 한없는 회한으로 몰아간다.
아버지는 광업소 일을 그만두고 "노다지 꿈"을 키우다 연탄 한 장도 마련
하지 못한 채 사고를 당했다.
대신 어머니가 탄광으로 일하러 다녔다.
저탄장에서 분탄을 긁어모아 집으로 가져오다 미연과 맞부딪친 날, 그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던가.
강릉에서 열린 작가사인회에 그녀가 친구를 보내온 것을 계기로 그는
"잃어버린 시간"을 복원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서울로 온 그녀는 두살 위의 사촌오빠에게 의지하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으며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한 오빠가 군에서
자살하자 속죄하듯 그 집안의 버려진 아이를 맡아 기르고 있었다.
마침내 미연과 만난 그는 가슴이 미어진다.
바닷가 헌화로에서 "3월이 오면 다시 와 너에게 이 절벽끝의 꽃을 꺾어
바치겠다"고 말하지만 미연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꽃 하나와 가장
아름다운 꽃 하나를 이미 받았다"며 거절한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나 흔들지 마. 니가 흔들면 내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내가 들고 있는 꽃이 흔들리니까. 내일 올라가" 이제 그곳에 "내 마음의
정동"은 없다.
이발소 그림같은 소나무 한 그루와 볼썽사나운 시비가 서있을 뿐이다.
이 작품의 여정은 서울에서 정동진까지의 단선행이지만 작가의 마음속에 난
길은 한 줄기가 아니다.
그는 추억과 해돋이뿐 아니라 삶의 옆구리를 두들기는 파도소리를 화폭에
함께 배치한다.
그래서 순백색 기억의 한 켠으로 탄가루에 덮힌 광부와 어부의 얼굴들이
겹쳐진다.
그곳은 "바른 동쪽"이라는 의미도 모르고 목숨바쳐 탄을 캐고 거친 바다와
싸우는 사람들의 현재진행형 삶터다.
마지막 문장이 붉은 낙관처럼 선명하다.
"...비누방울같은 환상 속에 그대가 밟고 선 그 곳이 바로 그들 삶의
마당자리가 아닌가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대, 정동진에 가면 말이지요"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9일자 ).
를 연상시킨다.
주인공은 30대 중반의 작가 박석하.그는 잃어버린 옛사랑을 찾아 추억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정동진"이다.
그곳은 유년시절부터 "정동"으로 불려온 마음의 고향이다.
드라마 속에 나온 관광지 정동진이 아니라 "열여섯살 때 내 삶의 가장 아픈
모습으로 떠나온 정동"의 탄광 마을인 것이다.
봄날 저녁 강릉에서 정동으로 돌아오던 기차 안에서 "나중에 큰 사람이
되어서 꼭 다시 와야 돼"라고 말하던 김미현.
광업소 부소장집 딸과의 추억은 "봄마다 붉은 꽃잎이 바람에 눈처럼 날리던"
화비령 고개를 닮았다.
가난 때문에 진달래꽃을 꺾어 가겟집 아주머니에게 국수를 바꿔오던 시절.
산 언저리에서 그 아이를 몰래 바라볼 때면 마음에 꽃물이 드는 것처럼
황홀했고 그 애가 쳐다볼 땐 금방 어디에라도 몸을 숨기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나폴거리며 뛰어가는 그 아이의 하얀 블라우스와 분홍색 스웨터, 물방울무늬
치마가 꽃보다 더 꽃같던 풍경이 그를 한없는 회한으로 몰아간다.
아버지는 광업소 일을 그만두고 "노다지 꿈"을 키우다 연탄 한 장도 마련
하지 못한 채 사고를 당했다.
대신 어머니가 탄광으로 일하러 다녔다.
저탄장에서 분탄을 긁어모아 집으로 가져오다 미연과 맞부딪친 날, 그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던가.
강릉에서 열린 작가사인회에 그녀가 친구를 보내온 것을 계기로 그는
"잃어버린 시간"을 복원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서울로 온 그녀는 두살 위의 사촌오빠에게 의지하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으며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한 오빠가 군에서
자살하자 속죄하듯 그 집안의 버려진 아이를 맡아 기르고 있었다.
마침내 미연과 만난 그는 가슴이 미어진다.
바닷가 헌화로에서 "3월이 오면 다시 와 너에게 이 절벽끝의 꽃을 꺾어
바치겠다"고 말하지만 미연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꽃 하나와 가장
아름다운 꽃 하나를 이미 받았다"며 거절한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나 흔들지 마. 니가 흔들면 내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내가 들고 있는 꽃이 흔들리니까. 내일 올라가" 이제 그곳에 "내 마음의
정동"은 없다.
이발소 그림같은 소나무 한 그루와 볼썽사나운 시비가 서있을 뿐이다.
이 작품의 여정은 서울에서 정동진까지의 단선행이지만 작가의 마음속에 난
길은 한 줄기가 아니다.
그는 추억과 해돋이뿐 아니라 삶의 옆구리를 두들기는 파도소리를 화폭에
함께 배치한다.
그래서 순백색 기억의 한 켠으로 탄가루에 덮힌 광부와 어부의 얼굴들이
겹쳐진다.
그곳은 "바른 동쪽"이라는 의미도 모르고 목숨바쳐 탄을 캐고 거친 바다와
싸우는 사람들의 현재진행형 삶터다.
마지막 문장이 붉은 낙관처럼 선명하다.
"...비누방울같은 환상 속에 그대가 밟고 선 그 곳이 바로 그들 삶의
마당자리가 아닌가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대, 정동진에 가면 말이지요"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9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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