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따갑던 5일 오전 경기도 동두천시 하봉암동 승전교 근처 공장밀집
지대.

신천에서 갈라져 나온 지천을 끼고 8개의 공장이 모여 있다.

하천둑이 무너지면서 일대가 물에 잠겼던 곳이다.

물이 빠져 나가면서 이 일대는 온통 진흙탕으로 변해 있었다.

좁은 진입로 양편으로 수북이 쌓인 폐비닐과 부서진 집기들.

흙투성이가 된 섬유원단.

곳곳에 쌓인 수해쓰레기는 마치 짓다만 공사장의 모습이었다.

발목까지 빠지는 진흙길을 지나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은 일신산업.

섬유자재를 임가공해 미국 유럽 등지로 수출하는 회사다.

2백평 남짓한 공장안으로 지게차가 쉴새없이 드나들었다.

물과 흙으로 범벅이 돼 걸레조각 처럼 변한 섬유원단과 제품을 연신 실어
냈다.

형형색색의 원단은 하나같이 흉물스런 진흙옷을 입고 있었다.

종업원 송재선(66)씨는 "말려도 색상이 변하기 때문에 이젠 쓰레기"라고
말했다.

종업원 25명에 월매출액 1억원인 이 공장은 이번 수해로 5억원 가량의
손해를 봤다.

이강수(42) 사장은 "물에 젖은 원단만 10만야드에 달한다"면서 "경제적인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수출 피크타임에 공장을 가동하지 못해 신용마저
떨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일신산업 바로 옆에 있는 건영산업은 규모가 큰 만큼 피해도 많았다.

1천3백여평의 공장안에는 종업원 20여명과 인근 군부대에서 지원나온 병사들
이 바닥과 기계설비에 붙은 진흙을 닦아내느라 여념 없었다.

게다가 장대비에 이은 태풍 올가의 습격으로 공장 한쪽의 지붕이 날아가
공장안에서도 하늘이 보였다.

공장측은 "7억원 정도의 손실을 입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작년에도 수해로 10억원의 손해를 봤다.

한 종업원은 "새로 들여와 한번도 쓰지 않은 설비마저 못쓰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육가공 업체인 수산물산 입구에는 고기제품을 담았을 빈 바구니와 포장지
폐비닐 마대자루 등이 진흙과 함께 뒤범벅이 돼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종업원들이 젖은 책상과 의자 등을 물로 씻어내고 있었다.

관리차장인 박진환(38)씨는 "원료 10t과 제품 5t 가량이 못쓰게 돼 7억원
정도의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박씨는 "냉동식품은 물과 상극인데 진흙뻘까지 묻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면서 안타까워 했다.

그는 "매년 이런 식으로 수해를 당해 공장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할 판"이라면서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닭가공업체인 마니커는 입구부터 심한 악취를 풍겼다.

물에 젖은 닭고기 재료가 썩는 냄새였다.

보건소에서 나온 방역차량이 공장을 돌며 약을 뿌려대 하얀 소독약이 안개
처럼 공장을 뒤덮고 있었다.

한형석(51) 사장은 "보관중이던 닭고기 재료 2백t이 다 썩어 버렸다"면서
"완제품 손실과 기계수리비용까지 합하면 피해액이 15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도 수해로 25억원의 손해를 봤던 한 사장은 "IMF체제 이후 회사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2년 연속 수재를 당하니 할말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 공장 관계자는 "작년에도 둑이 터져 큰 피해를 냈어요. 그런데도 1년이
지나도록 시청에서는 한 일이 없어요. 제방복구작업만 제대로 했어도 똑같은
피해가 되풀이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번엔 하늘 탓이 아니라 무심한 관청 탓이었다고 목청을 높였다.

< 동두천=이건호 기자 leek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