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은강씨의 장편소설 "바다로 가는 아이"(가야넷)는 잔잔하면서도 슬프다.

이 소설은 수혈로 인해 에이즈에 감염된 딸 소소와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을
그린 작품이다.

아직 채 살아보지도 못한 생을 훌쩍 뛰어넘어 죽음앞에 선 네살짜리 딸,
경제적으로는 무능하지만 아이의 꿈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

"소소는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로 시작해 "아이의 얼굴에 살포시 달빛이
내려와 앉는다"로 끝나는 이 소설은 눈물겹고도 따스하다.

삶의 고단함에 지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가족과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소소는 이혼한 아버지의 마음을 배려할 줄 아는 조숙한 소녀.

슬픔을 속으로 삭이는 아버지와 천진난만한 딸의 대화는 때로 웃음을
자아낸다.

"아빠, 그러면 내가 돈 많이 사오면 되잖아" "어디 가서?" "돈 파는 은행에
가서" "돈은 무엇으로 살래?" "이걸로 사면 되지" 돼지저금통을 들고 와 흔들
어보이던 딸은 "아빠는 그것도 몰랐어?"하며 "그러니까 머리를 써야지"라고
훈계까지 한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고향 바다를 보여주기 위해 친구에게 빌린 차로 여행길에
오른다.

낡은 자동차 속에서 나누는 부녀의 대화는 유쾌하다.

자잘한 사건들도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는 추억이다.

그러나 삶의 맨 얼굴을 본 사람은 안다.

가만가만 들려오는 웃음 너머로 명치끝을 아릿하게 찌르는 아픔이 가로질러
가는 순간을.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지난 삶을 반추하는 아버지와 죽음을 눈치챈 아이가
손을 잡고 걷는 바닷가 모습은 가슴 미어지는 풍경이다.

엄마를 만나게 해준다는 약속에 들떠 장난까지 치던 소소는 그러나 소풍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만 영원히 잠들고 만다.

차마 "미안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사랑의 안쓰러움이 쓸쓸한 삶의
옹이로 박혀있는 작품이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