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이 26일 퇴임후 첫 기자회견을 갖고 김대중 대통령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DJP의 내각제 개헌 연기 합의에 대해 "유신정권의 망령을 보고 있다"며 현
정권을 싸잡아 비판했다.

또 "독재에 대한 투쟁으로 장기집권 음모를 저지하겠다"며 정치재개도
선언했다.

사실 현 정권이 내각제 개헌을 유보키로 한 게 대국민 약속위반이라는 김
전 대통령의 지적은 옳은 말이다.

이에 대해 "누군가 나서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도 타당하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압도적이다.

무엇보다 김 전 대통령은 환란의 최종 책임자다.

국민 대부분을 실직과 감봉 등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원죄를 안고 있다.

설사 경제문제는 강경식 부총리 등 경제관료들에게 맡겼고 그들의 정책실패
가 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가져왔다 하더라도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김
전 대통령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충고는 못할 망정 현 정권의 실정에 대해 비판할 입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김 전 대통령은 현 정권에 대한 독설을 퍼부으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부산의 지역정서에 호소하며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있다.

나아가 그가 그토록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DJ와 함께 "후 3김시대"를
2000년대에도 계속하겠다는 노욕을 부리고 있다.

정치재개의 모습이 어떤 형태가 됐건 "40대기수론"을 들고 나온 지난 60년대
후반 이후 30여년동안 이끌어온 보스정치를 새로운 밀레니엄에서도 계속하겠
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반대세력을 인정하지 않고 세대결을 벌이고 독선과 비방만 있고 정책대결은
없는 구태가 판칠 전망이다.

밀실야합 등 신물나는 행태에 대한 국민의 염증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경제정책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통령이 한국정치의 민주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데 정치학자들은 공감하고 있다.

하나회를 제거해 군의 정치적 중립을 가져오고 "5.18"을 단죄해 신군부에
대한 역사적 심판도 내렸다.

금융실명제나 지방자치제 등 선진제도를 도입한 것도 그의 공로이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여기에서 멈춰야 한다.

퇴임한 대통령이 국정에 충고하고 협조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게 국민의 소망이다.

YS는 말을 아껴야 한다.

어떠한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그것은 한국정치의 역사를 뒤로 후퇴시키는데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10년전 수준으로 후퇴한 것만으로도 국민은 힘들어하고 있다.

< 정태웅 정치부 기자 redae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