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총재인 김대중 대통령은 8일 김영배 총재권한대행의 사표를
반려했다가 다시 수리했다.

김 대통령은 또 사의를 표명한 당 8역에 대한 사퇴서를 모두 수리, 금명간
대폭적인 당직개편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은 당직자들이 시국수습과 국면전환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애당적 견지에서 신임을 묻는 결단을 내린데 대해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고
국민회의 이영일 대변인은 전했다.

이에앞서 김 대행은 이날 국회에서 당8역회의를 연 뒤 "여야관계가
특별검사제를 놓고 교착상태에 빠졌다"며 "김 대통령이 시국수습 구상을
편안하게 하도록 하는게 도리라고 판단해 당8역이 사퇴키로 했다"고 밝혔다.

김 대행은 또 "지난 6월25일 김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했을 당시
당지도부가 사퇴했어야 옳았으나 그렇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김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한 당직자들
가운데 일부는 재임명 될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당직개편은 김 대통령이 청남대에 갔다온 뒤에 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빠르면 9일중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 일괄사표를 제출했나 =표면적인 이유는 "김 대통령의 정국구상의 폭을
넓혀주기 위한 것"(김 대행)이다.

그러나 직접적 배경으로는 <>여당으로서의 정국주도권 상실 <>특검제도입
문제를 둘러싼 자민련과의 혼선 <>김 대행과 당3역간의 불협화음설 등이
혼재된 결과라는게 여권의 일반적 관측이다.

실제로 국민회의는 "고관집 절도사건"등 각종 의혹사건이 잇따르며 국민의
비난이 거세지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야당에 질질 끌려다녔다.

이와관련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김 대통령이 당8역의 사표를 수리한 것은
분위기 쇄신차원"이라고 말해 대야협상의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한 수순이
진행될 것임을 예고했다.

김종필 국무총리와 김 대행이 특검제도입을 두고 이견을 보인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물론 김 대행의 사표는 반려됐지만 "대행의 경우 전당대회가 얼마남지
않은데다 원외가 아니면 대안이 없었다"(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점에서 이번
일괄사표가 인책성이라는 뜻을 읽을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일부에선 특검제 전면도입을 둘러싼 김 총리와 김 대행의
기세싸움에서 김 대통령이 김 대행의 손을 들어줬다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날 김 대행 유임과 관련 김종필 총리가 상당한 불만을 표시했다는게
이를 말해준다.

김 대행이 사무총장 원내총무 정책위의장 등 당3역간의 불협화음설도
일괄사표제출의 배경이 됐다.

이는 "그동안 김 대행과 당3역간의 손발이 잘 맞지 않았다.

이때문에 대야관계가 잘 안된 편이었다"(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언급에서도
잘 나타난다.

후임 사무총장으로 한화갑 총재특보단장, 김옥두 지방자치위원장, 박상천
전 법무장관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어 동교동계의 전진배치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선출직인 총무에는 김원길 전 정책위의장과 이협 의원, 이해찬 전 교육장관
이 거명되고 있어 총장과 총무는 경질될 게 확실시된다.

이와관련 당직개편이 대폭으로 이뤄질 경우 8월 전당대회가 연기될 가능성
이 있는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자진사퇴인가 타의인가 =김 대행은 "7일 저녁 심사숙고끝에 사퇴를
결정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날 오전 당8역회의에 앞서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일괄사퇴의사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일부당직자와는 사퇴문제를 상의했으나 정균환 총장, 손세일 총무, 장영철
정책위의장 등 당3역은 이날 오전 회의직전까지 자신들을 포함한 지도부의
사퇴결정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대행 혼자서 결정한 일이란 것이다.

그러나 김 실장이 김 대행에게 당직개편에 대한 김 대통령의 뜻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강하다.

김 대통령이 사퇴결정을 "애당적 견지에서 내린 결심"으로 평가했다는 점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전당대회를 한달남짓 앞두고 김 대통령의 의중과 관계없이 사표를 내는
것은 거의 "항명"에 가깝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의 청남대 구상계획이 방미전에 이미 잡혀있었던 점도 이번
일괄사표가 인책성인사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최명수 기자 mes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