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에도 인격은 있다"

이런 설정은 서양영화에서 오래전부터 써온 고전적 수법이다.

"악당은 지옥으로"식 권선징악은 서부활극의 유물이다.

"대부"시리즈에서 불한당의 세계를 미화한 할리우드영화는 공권력에 쫓기는
범법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용서받지 못할 자"들을 대중편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도덕재무장의 설교에 귀가 따가워진 관객들의 하품속을 틈새시장 삼아
대중을 현혹하는 것이 범죄자 영웅주의 영화들이다.

범죄자를 높이 받드는 영화의 주인공들을 보면 대개가 무식하거나 밑바닥
인생을 겪은 사람들이다.

고생 많고 불행했던 과거를 감안하면 "쨍하고 볕들날"을 기다린 보람을
누려야 할 계층인 것이다.

그들의 범죄는 사회의 부조리가 조장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관객들은 은근한
동정심을 보내기도 한다.

그 이면엔 한바탕의 볼거리를 제공한 것에 대한 사례의 마음도 깔려있다.

그 상대가 무지한 하층민 출신이라면 적선의 의미가 더욱 커지므로 법망을
벗어나는 범죄자에게 박수를 아낄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하류계급의 탈법자가 스크린을 누비던 시대도 한물 간지 오래다.

이제는 상류사회의 지능범도 진부해졌다.

하류층-상류층에 이어 새롭게 등장한 범죄계층은 지식층...

요즘 장기흥행을 하는 "엔트랩먼트"의 컴퓨터 범죄도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선 지식층 범죄자의 신분이 전문가보다 한단계 위, 즉
박사나 교수급으로 높아졌다.

상식으로 통하는 "학자의 고매한 인품"을 뒤집음으로써 관객들에게 반상식의
쾌감을 세일하는 새로운 스크린 상술이 등장한 것이다.

날씨를 조작하여 세계정복을 꿈꾸는 미치광이 기상학자가 등장하는
"어벤저"가 그런 작품이다.

학문적 업적이 큰 노학자가 자신의 연구결과를 밑천삼아 제국의 건설을
꿈꾸는 야망은 그래도 과학자다운 편모가 있다.

SF에 곧잘 등장하는 박사급 우주악당이 그렇다.

"주라기 공원"에 나오는 유전자 학자는 자신의 연구를 밑천삼아 공룡을
되살려 엄청난 부를 쌓으려 하지만 그 역시 흔히 있는 야심가일 뿐이다.

지배욕이나 물욕은 머리좋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갖는 공통욕구이고
보면 그런 소재가 오락영화에 등장하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런데 관록의 노학자가 지능범이 아닌 잔혹한 살인마로 등장하는
"인스팅트"에선 어안이 벙벙해진다.

할리우드의 소재사냥도 이제는 갈데까지 간 모양이다.

"인스팅트"에 나오는 살인범의 전력은 저명한 인류학자다.

명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저지르는 살인장면은 그의 대표작 "양들의 침묵"
에서 보여준 잔혹성을 연상할 만큼 끔찍하다.

이 영화는 끝까지 노학자의 범죄가 이유있는 것으로 변호하며 흉악범의
탈옥을 성공시킨다.

그의 살인습성은 학자적 양심과는 관계없는 오랜 정글연구 생활에서 체득된
야생동물의 인스팅트(본능)와 같은 것이라는 점을 은근히 강조하면서...

이런 지성모독이 시들해질 쯤이면 어떤 범죄계층이 다음 타자로 등장할지
궁금하다.

극단적 가정을 한다면 성직자를 잔인한 살인자로 세우는 "신성모독"이 나올
것도 같다.

< jsrim@ 편집위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