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적 구년묵이 말을 하자면 이렇다.

남존여비 사상이 판을 치던 구시대에선 아내를 퇴출시킬수 있는 일곱가지
구실이 관습적으로 용인됐었다.

시부모 불공경부터 시작되는 "칠거지악"중 부정(음행)은 자식을 못낳는
허물에 이어 퇴출요건 제3순위였다.

만일 현대사회에 "이혼 7사유"라는 불문율이 존재한다면 그 으뜸 항목은
무엇일까.

아마 간통일 것이다.

일본 남편들도 아내의 부정에는 매우 단호한 모양이다.

"우나기"의 주인공은 아예 살인으로 단죄한다.

초반에 등장하는 살인장면이 매우 엽기적이다.

범행묘사가 너무 끔찍한 데다가 불륜의 정사장면이 필요이상으로 적나라해
흥미중심의 치정살인극이거나 에로티시즘으로 한몫 보려는 대중영합 영화이거
니 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자수-투옥-가석방-감호생활로 이어지는 한 살인범의 인생역정이 자못 구도적
으로 나타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아내를 사랑한 만큼 배신에 대한 분노가 컸던 주인공의 충동살인에 대해서도
"오죽했으면"이라는 동정심이 가게 하고...

알려진대로 "우나기"는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한 최초의 일본영화다.

상륙한지 두달이 가깝지만 아직도 개봉관에서 상영중이다.

롱런이 기능했던 것은 칸느영화제 수상작(98년 황금종려상)이라는 경력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이 영화가 한국 팬을 사로잡은 요소는 전편에 깔려 있는 동양적 사유가
아닐까 싶다.

그것은 참회와 구도, 인내와 끈기, 그리고 기다림이다.

우나기(뱀장어)라는 타이틀이 보여주는 상징성도 매우 동양적이다.

과묵한 주인공은 이 징그러운 물고기를 복역때부터 애지중지하게 된 이유로
"말을 하지않기 때문"임을 밝히고 있지만 그것은 영화의 전편에 흐르는 테마
와 일치하는 상징성, 즉 뱀장어 특유의 회귀본능과 일맥상통한다.

스크린에 나타난 부정적 인간상도 동양적 색깔이 강하다.

주인공의 잔인한 범행수법이나 주변인물의 역겨운 행동들이 그것이다.

총 한발로 끝낼 일을 난자질로 해결한다든지 미운 사람의 뒷다리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작태라든지...

남의 행복에 대한 끊임없는 질시와 훼방은 "사촌이 땅 사면 배아픈" 한국인
의 고질적 심술과 유사해 씁쓸하다.

이런 서글픔은 악행도 단발로 끝내는 서양영화에 길들여진 탓일까.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여성에게 우호적이 못된다.

초반엔 주인공 아내의 불륜장면을 노골적으로 보이더니 종반엔 여주인공
어머니의 모습을 매우 추악하게 그리고 있다.

여주인공도 순진가련형이지만 그 역시 전력이 안좋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아무래도 페미니스트는 못되는 것 같다.

그가 만일 고급 옷 로비사건에 휘말린 한국의 귀부인들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

< jsrim@ 편집위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