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서 건져올린 투명한 시어 .. 곽재구 시집 '꽃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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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변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사는 시인 곽재구(44)씨.
냄비에 강물을 담아 커피를 끓이면서 그는 생각에 잠긴다.
이 강가에서 "시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게 24년 전이었지.
"바람이 불고 흰 빛의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꽃다발. 나는 스무살이었고 무수한 꽃다발들이 영혼의 그림자처럼 강변
여기저기에 직립해 있었다"
그가 섬진강에서 건져 올린 시편들은 하나같이 맑고 푸르다.
새 시집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열림원)에는 강의 노래와 사람의
노래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수제비죽을 쑤어놓고 "맛있는 내음을 함께 맡아줄 이"를 기다리며 지나온
세월.
그는 이 시집을 "섬진강과 그의 사랑스러운 연인 보성강에게, 75년 이후
그곳 모래 위에 발자욱을 남긴 모든 추억에게" 바친다고 썼다.
노래마다 강이 뿜어내는 안개와 수심 깊은 곳에서 울리는 그리움의 화음이
응축돼 있다.
절제된 어법과 명징한 은유가 돋보인다.
그 중에서도 짧은 시편들이 먼저 다가온다.
"내 님/떠난 뒤//찔레꽃/피고 지고//눈물/메말라//강언덕 길/보지 못하였네/
/은장도/차가운 날에//버혀진 등불/미리내 되었어라//삼경/베틀 앞에 앉아//
손톱 속/접동새 울음소리/바늘로 따네"("봉정리에서"전문)
"꽃이 피어서/산에 갔지요//구름 밖에/길은 삼십 리//그리워서/눈 감으면//
산수유꽃/섧게 피는/꽃길 칠십 리"("산수유꽃 필 무렵"전문)
그는 첫 시집 "사평역에서"이후 빼어난 서정과 아름다운 시어로 주목 받아
왔다.
낡은 나룻배로 강을 오르내리면서 그리운 사람들을 하나씩 태워다 주는
시인.
이따금 봇짐을 진 고등어장수나 강바람 봄날의 빗줄기가 그에게 세상 이야기
를 전해준다.
그는 "오래전 푸른 강물을 건너 떠나간 이름들,한없이 지치고 쓸쓸한 모습
으로 언제가는 은어떼처럼 다시 돌아올 그들을 강 언덕에 앉아 함께 기다리
자"고 말한다.
33편에 이르는 "연화리 시편"도 수채화같은 그림엽서.
그는 물살에 몸을 맡기고 흔들리다가 "사랑하는 이여,/어느 하상엔가 칡꽃
으로 뒤덮인 한 나룻배가 얹혀 있거든/한 그리움의 폭우가 이 지상 어딘가에
있었노라/가만히 눈감아줘요"("그리운 폭우"부분)라고 속삭인다.
"강으로 가는/길목에서/매일 나뭇잎배/하나씩을 띄웠습니다//그/나뭇잎배에
/나는 내 이름이나/영혼의 흔적같은 것을/새기지 않습니다//어쩌다/당신이
내 배를 발견하곤/말하겠지요/난 너를 알아/네가 만든 이 작은 배도"("나뭇
잎배"전문)
시인 강은교씨는 그의 시를 "뛰어난 이미지들로 조직된, 기가 막히게 아름
다운 연시들"이라고 극찬했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31일자 ).
냄비에 강물을 담아 커피를 끓이면서 그는 생각에 잠긴다.
이 강가에서 "시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게 24년 전이었지.
"바람이 불고 흰 빛의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꽃다발. 나는 스무살이었고 무수한 꽃다발들이 영혼의 그림자처럼 강변
여기저기에 직립해 있었다"
그가 섬진강에서 건져 올린 시편들은 하나같이 맑고 푸르다.
새 시집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열림원)에는 강의 노래와 사람의
노래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수제비죽을 쑤어놓고 "맛있는 내음을 함께 맡아줄 이"를 기다리며 지나온
세월.
그는 이 시집을 "섬진강과 그의 사랑스러운 연인 보성강에게, 75년 이후
그곳 모래 위에 발자욱을 남긴 모든 추억에게" 바친다고 썼다.
노래마다 강이 뿜어내는 안개와 수심 깊은 곳에서 울리는 그리움의 화음이
응축돼 있다.
절제된 어법과 명징한 은유가 돋보인다.
그 중에서도 짧은 시편들이 먼저 다가온다.
"내 님/떠난 뒤//찔레꽃/피고 지고//눈물/메말라//강언덕 길/보지 못하였네/
/은장도/차가운 날에//버혀진 등불/미리내 되었어라//삼경/베틀 앞에 앉아//
손톱 속/접동새 울음소리/바늘로 따네"("봉정리에서"전문)
"꽃이 피어서/산에 갔지요//구름 밖에/길은 삼십 리//그리워서/눈 감으면//
산수유꽃/섧게 피는/꽃길 칠십 리"("산수유꽃 필 무렵"전문)
그는 첫 시집 "사평역에서"이후 빼어난 서정과 아름다운 시어로 주목 받아
왔다.
낡은 나룻배로 강을 오르내리면서 그리운 사람들을 하나씩 태워다 주는
시인.
이따금 봇짐을 진 고등어장수나 강바람 봄날의 빗줄기가 그에게 세상 이야기
를 전해준다.
그는 "오래전 푸른 강물을 건너 떠나간 이름들,한없이 지치고 쓸쓸한 모습
으로 언제가는 은어떼처럼 다시 돌아올 그들을 강 언덕에 앉아 함께 기다리
자"고 말한다.
33편에 이르는 "연화리 시편"도 수채화같은 그림엽서.
그는 물살에 몸을 맡기고 흔들리다가 "사랑하는 이여,/어느 하상엔가 칡꽃
으로 뒤덮인 한 나룻배가 얹혀 있거든/한 그리움의 폭우가 이 지상 어딘가에
있었노라/가만히 눈감아줘요"("그리운 폭우"부분)라고 속삭인다.
"강으로 가는/길목에서/매일 나뭇잎배/하나씩을 띄웠습니다//그/나뭇잎배에
/나는 내 이름이나/영혼의 흔적같은 것을/새기지 않습니다//어쩌다/당신이
내 배를 발견하곤/말하겠지요/난 너를 알아/네가 만든 이 작은 배도"("나뭇
잎배"전문)
시인 강은교씨는 그의 시를 "뛰어난 이미지들로 조직된, 기가 막히게 아름
다운 연시들"이라고 극찬했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