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영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종전에는 예금을 많이 끌어오는게 중요했다.

대출을 세일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 결과 일반서민과 중소기업엔 은행 대출창구가 한없이 높기만 했다.

요즘엔 대출을 잘하는 직원이 은행에서 대접받는다.

인사고과도 대출위주로 이뤄진다.

금융기관이나 기업들로부터 거액예금을 덥썩 받았다간 "리스크관리를
소홀히 한다"는 이유로 질책받기 십상이다.

조흥은행이 대규모 대출모집인 제도를 운용키로 한 것은 이같은 패러다임
변화의 전형이다.

이 은행은 "대출받길 원하는고객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기 보다 직접 대출
고객을 찾아 밖으로 나가겠다"며 제도를 도입하게된 이유를 설명했다.

조흥은행은 대출모집인을 통해 아파트등 주택담보대출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파트담보대출의 경우 수익성이 가장 좋다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

조흥은행 뿐만 아니라 은행들은 요즘 너도나도 아파트담보대출을 확대하고
있다.

외환 신한 주택 국민 기업은행 등은 연 9.75%의 저금리로 대출해 주고 있다.

아파트담보대출 경쟁은 작년부터 불붙었다.

불은 씨티은행이 당겼다.

씨티은행은 IMF직후 국내은행들이 침체된 틈을 타고 마켓세어를 늘리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본격 취급하기 시작했다.

이후 신한 하나은행 등이 저금리를 내세우며 시장점유율을 상당히 끌어
올렸다.

구조조정 와중에 있던 조흥은행으로선 "강건너 불구경" 식으로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조흥은행이 대출모집인과 같은 "고단위 처방"을 내놓은 것은 그간 잃었던
시장을 회복하자는 차원만은 아닌 것 같다.

조흥은행은 전통적으로 소매금융에 강하다.

서울은행을 인수하는 HSBC(홍콩상하이은행)는 도소매를 가리지 않고 세계
최고다.

HSBC가 진출했을 때 치열해질 경쟁에 대비, 선수치기에 들어간 것이다.

4천명이란 대규모 인력을 동원할 경우 단기적으론 상당한 효과를 거둘수
있을 것이란게 금융계의 분석이다.

물론 요즘 대출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대출이 한꺼번에 급증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대출모집인들이 수수료 수입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발벗고
대출고객 확보에 나설 경우 의외의 결과도 나올 수 있다.

일부에선 주택금융시장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한다.

대출모집인 제도 시행에 따른 부작용도 우려된다.

다른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대출모집인 제도를 두게 되면 결국 은행끼리
제살깎아먹는 꼴이 되는 것이다.

무리한 대출확대로 인해 부실채권이 늘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를 막는 것은 엄격한 심사능력과 고객평가시스템에 달렸다.

대출모집인 제도는 인터넷을 통한 은행거래(인터넷뱅킹)가 임박한 시점에서
시대흐름에 맞지 않는 원시적인 영업방법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은행도 이를 인정한다.

그러나 외국계 은행과 한판 전쟁을 벌이기 위해 불가피하다며 상황논리를
내세운다.

< 이성태 기자 stee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