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리열풍"을 잇는다.

쉬리의 흥행바통을 이어 받겠다며 팔을 걷어 붙인 두 편의 한국영화가
주말극장가를 달군다.

김성홍 감독의 "신장개업"과 유상욱 감독의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봄나들이와 대학가 시험으로 관객이 뜸한 "잔인한 4월"이 끝나고 여름용
블록버스터의 개봉에 앞선 워밍업이 시작돼 두 영화의 관객몰이 여부가 관심
이다.

쉬리는 27일 현재 서울관객 2백26만명을 동원, "타이타닉" 제작사측이
주장하는 관객동원 기록도 깨면서 명실상부한 최고 흥행작품으로 올라선
상태.

두 영화는 과연 한국영화의 도약을 확인하는 2단로켓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신장개업은 "조용한 가족"을 연상케 하는 컬트 코미디.

인육을 넣은 자장면을 소재로 해 엮은 "서늘한 웃음"이 가득한 만화같은
영화다.

평화롭기만 한 시골의 작은 마을.

이곳엔 약국 미장원 슈퍼 등 모든 게 하나뿐이다.

당연히 중국집도 "중화루"가 유일하다.

어느날 중화루 맞은 편에 "아방궁"이란 허름한 중국집이 들어서면서 일이
벌어진다.

외부인인 트럭 채소장수에 의해 아방궁의 자장면맛이 기가 막히고 정력에도
좋다는 소문이 퍼지자 중화루는 파리만 날리게 된다.

중화루 왕사장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아방궁 자장면을 맛보던 중 사람의 손가락 토막을 발견하고 기절한다.

왕사장은 아방궁에서 자장에 인육을 쓴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왕사장도 할 수 없다.

사람고기를 한 번 써보는 수 밖에.

이때부터 왕사장은 주방장, 철가방 팔봉이와 함께 사람사냥에 나선다.

공포스런 상황도 유머러스하게 비틀어 웃음을 유도하는 솜씨가 빼어나다.

적재적소에 끼워 넣은 짧은 대사는 웃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로
기발하다.

부드러운 남성 이미지의 대명사인 김승우와 도시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진희경의 연기변신이 빛난다.

주방장 박상면, 철가방 이범수는 영화의 재미와 완성도를 얘기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주연같은 조연역할을 해냈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은 가상 역사 미스테리물.

일본이 한반도의 영구지배를 위한 은밀한 작업을 벌였고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에 그 비밀이 담겨 있다는 상상력이 이야기의 뿌리.

이상이 죽은지 60년이 지난 어느날.

다섯명의 젊은이가 "MAD이상 동호회"란 통신동호회를 만든다.

이들은 시인으로만 알려진 이상이 한때 총독부 건축설계사였고 1930년
사라졌다 2년뒤 갑자기 나타나 "건축무한육면각체"란 시를 발표했다는 사실을
모티브로 통신소설을 릴레이 연재한다.

그러나 소설을 올린 친구들은 하나씩 시체로 발견된다.

마지막까지 남아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시구를 실마리로 그 비밀을 추적하던
용민과 태경.

둘은 일제가 지금은 헐린 국립중앙박물관(구 조선총독부) 지하에 박아논
거대한 쇠말뚝을 발견한다.

허구와 사실을 교묘하게 짜맞춰 역사적 음모를 파헤쳐 가는 시나리오의 힘이
돋보인다.

그러나 이를 영상으로 옮기는데는 미흡했다.

도입부의 총정리식 영상을 다시 풀어내는 기법, SF영화의 맛을 살리기 위해
쓴 특수효과들도 영화의 재미와 긴박감을 부여하는데는 역부족이었다.

주인공들의 캐릭터는 영화의 큰 줄거리에 파묻혀 버렸다.

알베니즈의 "아스투리아스"만을 고집한 음악은 성의가 부족한 것 같았다.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