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 킬러닌경이 84세의 나이로 숨졌다고
유족들이 26일 발표했다.

72년 IOC위원장에 오른 킬러닌경은 80년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현 위원장
에게 자리를 넘기기 전까지 IOC에 처음으로 변화와 개혁의 바람을 일으킨
인물.

그는 "솔트레이크시티 뇌물스캔들"이 터지자 가족들에게 "내 생애에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며 탄식을 터트릴 정도로 올림픽과 그 정신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72년 뮌헨올림픽에서 이스라엘선수단 테러사건으로 올림픽이 위기를
맞았을 때 애버리 브런디지에 이어 IOC총수직을 맡았던 그는 특유의 뚝심과
낙천성으로 위기를 오히려 올림픽의 발전 전환점으로 삼았다.

IOC사상 처음으로 집행위원회에 여성들의 참여 기회를 연 것도 업적중의
하나.

그러나 킬러닌경은 아프리카국가들의 76년 몬트리올올림픽 거부운동, 80년
서방의 모스크바올림픽 보이코트 등 정치적 이유로 하계올림픽이 잇따라
파행의 길을 걷자 미련없이 IOC위원장직을 버리고 명예위원장으로 퇴진했다.

14년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명문"이튼 학교를 거쳐 소르본, 케임브리지
등에서 정통 엘리트코스를 밟은 뒤 "데일리 익스프레스"지에서 기자생활을
시작, "데일리 메일"에서 중국 특파원을 지내기도 했다.

"명배우" 존 포드와 영화제작에도 참여했고 경영인으로 활약하다 50년
아일랜드의 올림픽위원회(NOC)위원장을 맡았었다.

파이프담배와 술을 좋아해 말년 의사로부터 "금주"충고를 들었던 그는
조정과 복싱, 럭비, 산책, 승마 등을 즐긴 스포츠 애호가였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4남매가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