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현 전경제부총리는 소신과 신념을 굽히지 않은 원칙론자로 유명하다.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은 그의 소신은 5공화국 초기 경제안정화의
초석을 다진 요인으로 작용했다는게 일반적 평가다.

원칙론자였던 신 전부총리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곰바우"라는
생전의 그의 별명.

한번 원칙이 결정되면 우직할 정도로 밀고 나간다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그는 한국경제가 나락으로 빠져들던 지난 80년 경기부양책보다는 긴축정책
을 밀어붙였다.

지난 83년 두번째로 부총리에 취임한 직후 84년예산을 동결하는 과단성을
보였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이 "84년 예산을 묶어버리면 85년초 총선을 어떻게
치르란 말이냐"고 결사 반대했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84년에는 군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상처음으로 방위비를 삭감하기도 했다.

경제안정을 위해선 물가안정이 필수며 이를 위해선 긴축정책을 고수해야
한다는 소신이 작용한 결과였다.

신 전부총리는 지난 21년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나 일본 후쿠시마
경제전문학교와 미국 아메리칸대를 졸업했다.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56년엔 33세란 최연소 나이로 한은 조사부장에 올랐다.

64년엔 세계은행에 입행,교체이사 및 고문을 지냈다.

지난 75년 청와대 경제담당 특별보좌관으로 귀국한 뒤 78년부터 80년까지
제12대 한은총재를 지냈다.

신 전부총리는 지난 1일 부인과 함께 인근 치과병원에서 치료받고 귀가
하던중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다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병원에 후송됐으나 뇌에 출혈이 많아 수술도 받지못한채 세상을 떠났다.

둘째 딸 수경씨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컴퓨터시스템 담당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비타스 IMF 유럽담당 이사가 둘째 사위이며 코오롱그룹 이동찬 명예회장의
넷째딸 은주씨가 며느리이다.

빈소는 미국의 Gawler"s Jos & Sons Inc. 5130 Wisconsin Ave. NW.
Washington DC.

연락처는 (미국) 202-966-6400

< 하영춘 기자 hayo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6일자 ).